4차산업 혁명과 한국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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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사람처럼 진화해 평화롭게 공존하는 도시 ‘주토피아(zootopia)’에서 아기 토끼 주디는 경찰이 되길 꿈꾼다. 자라서 주토피아 역사상 최초의 토끼 경찰관이 되지만 주차단속만 하며 수사업무에서는 제외된다. 겉으로는 다양성과 공존을 내세우지만 은근히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는 주토피아에서 주디는 진짜 경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2016년 개봉한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의 주된 줄거리다.

영화 「주토피아」에서 신임 경관이 된 토끼를 코뿔소가 고깝게 바라보고 있다. / 「주토피아」

영화 「주토피아」에서 신임 경관이 된 토끼를 코뿔소가 고깝게 바라보고 있다. / 「주토피아」

주디가 활약할 때마다 영화의 주제가 ‘Try everything’이 흐른다. ‘뭐든지 해봐’라는 뜻의 이 노래 제목은 국내 더빙판에서 ‘최선을 다해’로 번역됐다. ‘뭐든지 해보라’는 말에는 세상은 만만하지 않고 장벽도 많지만, 개인의 꿈과 의지는 근본적으로 무엇으로도 침해돼선 안 되며, 그러기에 마음껏 원하는 것을 해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역사를 고려하지 않고 표현한다면, 신대륙으로 건너가 무에서 유를 창출한 미국인의 가치관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Try가 권리라면 최선은 의무다. 뒤처진 자가 치러야 하는 의무다. 일본은 미국의 힘 앞에 떨면서 개항했고, 한국은 그런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제국주의에 대한 규탄과 별도로 한반도의 민족에게 결국 시류에 뒤처져 근대화를 이루지 못했고, 최선을 다하지 못해 나라가 망했다는 자기 책임론이 역사를 타고 고스란히 전승됐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는 공포감 밴 정언명령은 한국인에게 역사적 DNA와도 같다. 한국인은 최선을 다해 20세기 내내 뒤처졌던 나라를 끌어올렸다. 그러고도 공포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의 유행이 그러지 않고서야 유행할 리 없다.

교육개혁, 복지정책, 연구개발 투자, 정부 시스템 변경 등 모든 변화의 당위로 ‘4차 산업혁명’이 거론된다. 10년, 20년 전부터 해왔던 일조차 꾸준히 그 진행과정과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보다 ‘4차 산업혁명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는 각주를 붙이는 게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사물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초연결사회에서 벌어질 변화에 대비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이 가능할까’란 가능성을 꿈꿔보기도 전에 ‘여기서 뒤처지면 우린 다 죽어’라는 공포감이 당연하게 덮친다. 그 결과 ‘4차 산업혁명 시대, 코딩으로 대학가자’는 구호가 유아 장난감 시장에도 스며든다. 코딩으로 뭘 할지 꿈꾸기 전에 최선을 다해 코딩을 배워야 할 거 같은 공포감으로부터는 언제 해방될 수 있을까.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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