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으로 살겠다」-결혼이 정상인 사회에서 독신의 존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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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생김도, 성격도 다 다르기 때문에 각자 다른 모양으로 사는 게 당연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르거나 주변에서 정해 놓은 길에 끼워 맞춰 살다 보면 결국 타인을 통해 보상받고 싶은 욕망이 생기고, 모두가 불행해진다.

20여년 전 과방에 모여 있던 동아리 여자애들끼리 독신으로 공동주택에 모여 살자는 신나는 계획을 모의했다. 대학 입학까지야 공부만 잘하면 됐으니 큰 차별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는데, 이후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남들은 대학 1학년의 낭만 혹은 방종을 즐길 때, 교외 장학금을 받아보겠다고 학점 관리에 매진하여 ‘올A’를 받았지만, 정작 장학재단에서는 다른 조건은 다 좋은데 여자라서 안 되겠다고 거절했다. 그때 여자인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그 많던 여학생들은 다 어디에 갔는지 학과 교수 수십 명 중 여성이 하나도 없었으니 여성으로서 롤모델로 삼거나 이후의 삶에 대한 조언을 해줄 사람은 근처에 없었고, 미디어에서 간접 경험하는 여성의 삶은 암담했다. 아이의 손을 뿌리치고 출근하다 아이가 죽고, 자식 죽인 여자가 돼 이혼하거나, 남편과 같이 영화감독을 꿈꾸었으나 아내 시나리오로 졸업한 남편만 유명 영화감독이 돼 괄시받다 결국 자살하거나, 경제력이 없어 남편의 바람을 참고 살아야 하거나 말이다.

독신은 비정상 모자람 취급받는 현실

우리들도 결혼 후 남성과 동등할 수 없다는 게 자명했으니 “엄마처럼 살지 않겠어” 혹은 “독신으로 살겠어”라며 자유로운 인생을 꿈꾸게 될 수밖에.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몇 년 새 줄줄이 결혼하여 애엄마가 됐고, 반쪽을 찾아 헤맬 필요 없는 완전체의 느낌이라 어쩐지 그날의 약속을 끝까지 지킬 것 같았던 W마저 나이의 앞 숫자가 또 바뀌기 직전 결혼해 고속으로 애엄마가 됐더랬다.

이 사회에서 편하게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만, 직장맘의 삶은 쉽지 않았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고, 친정어머니 도움도 받을 수 있었으므로, 누구보다 좋은 환경이었음에도 이러다 과로사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노동량은 가정에서 전적인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일에만 매진하는 사람을 표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가사·육아에 한 발짝 걸치고 소화하는 것이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연수원 동기였던 여성 판사는 아이 둘을 키우며 병원 갈 시간도 없이 일하다 세상을 떴다. 한 사람 몫을 하지 못한다는 편견에 굴복하고 싶지 않아 사력을 다하면서도 엄마가 직장생활을 해서 아이가 안정감이 없다는 주변의 걱정 사이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는데, 이러다 죽는 건가 하는 두려움까지 추가된 것이다.

선정성 작가의 만화 「독신으로 살겠다」의 한 장면. / 네이버웹툰

선정성 작가의 만화 「독신으로 살겠다」의 한 장면. / 네이버웹툰

명절을 앞두고 시험 보듯 새벽같이 일어나 기차표 예매할 생각에 머리가 아플 때, 골드미스가 된 다른 친구들이 설레며 출국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니, 가보지 못한 ‘독신의 길’이 간절해졌다. 애 데리고 명절에 여행을 가봐야 애 업고 걷다 여행인가, 고행인가, 여긴 어딘가, 난 누군가 했던 나와 어쩜 그리 다른지.

결혼을 안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펴보았으나, 사실 우리 사회에서 독신으로 사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네이버 웹툰 <독신으로 살겠다>는 주인공 유유희가 친구 민주 어머니로부터 “너네 결혼 왜 안 하냐. 어디 모지라? 이 결혼도 못한 등신들아!!!”라고 공격당하면서 시작한다. 결혼이 정상인 사회에서 독신은 비정상, 모자람, 혹은 앞으로 결혼이라는 과업을 달성해야 할 미완의 존재로 취급받는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손익계산을 하면 결혼이 손해인 세상에서 결혼을 통한 재생산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회가 선택한 방법이 이런 심리적인 압박인 걸까. 개인적으로도 결혼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결혼하라는 소리를 안 들어도 된다는 점이었고, 친정어머니가 결혼 안 하면 사회에서 어떤 성과를 이뤄도 아무 소용없이 그냥 결혼 못한 여자가 될 뿐이라며 하루가 멀다고 선보라고 밀어내지 않았다면 결혼을 했을까 가끔 생각한다.

“때로 독신인 양 내 위주로 살아보라”

유희는 6년이나 사귄 애인 형민과 결혼할 생각도 있었지만, 형민의 가족이 단지 자신의 아들 혹은 오빠와 결혼하려 한다는 이유로 유희를 무시하고 막 대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결혼을 접어두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평범한 결혼이 가능한 마지막 나이’ 35세, 폐경과 경제적 불안, 고독사에 대한 공포에 떨다 형민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냈으나 넌 결혼과 맞지 않는다고 거절을 당한 후 성공한 사업가 재다로부터 청혼을 받아 평범한 결혼을 결정한다. 그러나 재다는 유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제약하려고 했고, 결국 유희는 결혼으로 경제적·사회적 안정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자기 자신은 없어질 것 같아 파혼한다.

유희와 달리 그냥 남들 하는 대로 결혼한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극단적인 예지만, 유희의 옆집에 사는 도준의 부모는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고 선을 봐서 결혼했는데, 도준의 아빠는 아내가 보기 싫어 집에 오면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고, 도준의 엄마는 남편은 돈 벌어다 주는 기계라고 생각하고 오직 도준이 좋은 대학에 가고 아파트 시세를 올리는 데만 관심이 있다. 그래야 자기 불행한 인생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도준은 엄마의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 엄마가 싫어할 일을 하며 반항하다 결국 가출해 학교를 그만두고 시간을 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고 나선다. 도준의 엄마는 그제야 집착을 내려놓고 더 이상 불행하게 살지 않겠다고 남편에게 이혼을 선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내가 집착에서 벗어나자 도준의 아빠는 걸어 잠근 문을 열고 나와 아내와 마주선다. 돌이키기엔 이미 너무 늦어 버렸지만.

도준의 친구 미류네도 비슷하다. 시댁 반대로 하고 싶었던 일을 포기한 미류 엄마는 미류를 좋은 대학에 보내 시댁 식구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심정으로 미류를 다그치고, 감시하고, 심지어 미류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공부에 방해된다면서 몰래 장례를 치를 정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류는 충격을 받아 수능시험을 보지 못하고, 한동안 방황한 끝에 엄마를 떠나 그동안 엄마의 반대로 하지 못했던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간다.

사람은 생김도, 성격도 다 다르기 때문에 각자 다른 모양으로 사는 게 당연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르거나 주변에서 정해 놓은 길에 끼워 맞춰 살다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면 결국 타인을 통해 보상받고 싶은 욕망이 생기고, 모두가 불행해진다.

그러니 일도, 육아도, 가사도 다 완벽한 슈퍼맘이 되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저버리고, 때로 독신인 양 내 위주로 살아야겠다. 그래야 나중에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소리는 못할 테니까.

<최윤수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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