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관장의 황당한 전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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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출신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의해 임명된 인물이다. 관장 자리에 처음 앉았을 때부터 한국 정서를 모르는 외국인 관장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없지 않았고, 선임 과정의 불투명함에 따른 미술계의 반발도 있었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 연합뉴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 연합뉴스

최근 취임 1주년을 넘긴 마리 관장에 대한 평가 역시 썩 좋지 못하다.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혹평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고, 일부 미술계 전문가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존재감 없는 마리 관장을 비판하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싸늘한 눈길을 의식해서인지 마리 관장은 지난해 12월 언론을 통해 향후 3년 전시계획을 발표하며 시스템 혁신과 더불어 ‘수준 높은 전시’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미술계가 기대한 법인화 문제를 비롯해 고용불안에 놓인 직원들의 처우 안정성, 관람객 유치 방안, 전문성 확보 등의 과제는 심도 있게 다뤄지지 않은 대신 ‘공공프로그램 계획’, 영문출판물을 통한 한국 근현대미술의 세계화 등을 올해 주요 구상으로 내놨다.

문제는 ‘수준 높은 전시’, ‘시의성 있는 전시’에 ‘앤디워홀’(2월)과 ‘리처드 해밀턴’(11월), ‘피카소’(2018년) 등의 서양 거장들의 블록버스터 전시를 다수 포진시켜 놓았다는 점이다. 모두 지난 10여 년간 다양한 공간에서 지겹도록 열린 전시들로, 2007년 삼성미술관 리움, 2010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도 개최된 바 있다. 더구나 ‘앤디 워홀’을 비롯한 몇몇 전시는 이미 해외에서 기획된 전시를 가지고 오는 것들이다.

마리 관장의 야심찬(?) 플랜을 접한 미술인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집트 초현실주의자> 전, <신여성> 전, <요나스 메카스> 전, <아시아미술과 문화변동> 전과 같은 실험적인 전시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이 내놓은 신년 계획에 재탕의 끝판인 팝아티스트 및 큐비스트가 들어 있다는 것에 황당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그는 왜 뜬금없이 블록버스터라는 카드를 꺼냈을까. 사실 마리 관장의 입장에선 뭔가 한방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선임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부터 나가라 마라 하는 데다, 이미 취임 전 예정된 전시를 두고 성과가 있니 없니 따지니 이미지 쇄신을 위한 나름의 방안이 요구됐을 법도 하다.

하지만 마리 관장은 한국인의 문화수준을 너무 얕봤다. 서양 근현대미술 거장전이라면 무조건 열광하거나 앞뒤 안 가리고 줄을 서던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마리 관장의 새해 전시 리인업은 향후 행보에 되레 악수(惡手)라고 할 수 있다. 의도야 어떻든 한국을 낮잡아본다는 비판의 원인을 제공한 데다, 동시대미술의 최전선을 고지할 국립현대미술관의 역할과 위상에 부적절하다는 인상을 심어준 탓이다.

안타까운 건 자칫 문화선민주의 혹은 철학의 빈곤으로 인식될 수 있는 이런 발상이 한국에 대한 마리 관장의 심중을 대리하는 기표로 수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2015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1년 넘게 그를 지켜본 미술계 인사들은 “마리는 한국의 미술생태를 모르는 게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다”는 얘기를 자주 꺼내고 있다. 가시적 결과 없이 매번 말만 그럴싸하게 내뱉는 행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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