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경성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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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는 소설가 박태원의 호다. 그의 대표작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이름이다. 그는 서울 토박이로 경성제일고보를 졸업하고 도쿄에서 유학한 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던 당시의 경성 풍경과 도시인의 내면을 독특한 문장과 실험적 형식으로 담아낸 모더니스트 작가다. 그의 대표작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신출내기 소설가 구보가 청계천변 집을 나서 시내를 돌아다니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기법과 이 땅을 살아가는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이 작품은 근대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성기웅 작, 연출의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 사람들>은 바로 이 구보 박태원의 시선으로 1930년대 경성의 일상적 풍경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이는 연극이다.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창단 12주년을 맞이해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지난 2007년 예술의전당에서 초연됐다. 특히 이 작품은 성기웅이 지난 10년간 꾸준히 이어온 ‘구보씨 연작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성기웅과 극단 제12언어스튜디오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1930년대 경성에 대한 최초의 시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연극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사람들>은 어느 겨울날, 구보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돌아오기까지 하루 종일 집과 거리 안팎에서 듣고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로 박태원은 자신이 사는 도시의 모습에 관심이 많은 작가였고, 당대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었다. 옴니버스처럼 이어지는 6개의 에피소드는 각기 극중극의 형식을 띤 채 창작과 허구,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펼쳐지며, 일제강점기라는 정치적 질곡 속에서도 서구로부터 새로운 근대문물과 도시문화가 유입되며 역동적인 변화가 일어나던 당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모든 배우들이 30년대 경성 사투리를 사용함으로써 구보의 문학언어를 귀로 듣는 즐거움을 선사할 예정이다. 대사에는 영어, 일어, 중국어, 경성어가 혼용되는데, 당시 경성에서 실제로 쓰였던 것을 반영한 것이다.

이와 함께 극중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사이에서 시인 이상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는 구보의 고민은 당시 박태원을 괴롭혔던 고민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작가 자신의 화두이기도 하다. 억압 속에 살아야 했던 이 땅의 예술가들은 늘 가난했고, 머리로는 현실로부터 자유로운 예술의 첨단을 꿈꾸면서도 언제나 주변의 문제들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구보씨는 바로 그러한 이 땅의 젊은 예술가들의 초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공연의 서울 무대인 CKL스테이지가 자리잡고 있는 한국관광공사 건물은 연극의 주인공 구보 박태원의 생가이자 연극의 주요 배경 중 하나인 ‘공애당 약국’이 있던 바로 그 자리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끈다. 극중 공애당 약국 건물의 2층 방에서 소설 창작에 몰두하는 구보 박태원의 모습과 그가 그린 청계천변 사람들의 풍경을 그가 실제 살고 수없이 거닐었던 역사적 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10월 18~27일, 서울 CKL스테이지.

<김주연 연극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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