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한가운데 묶인 닭, 1970년대 선술집, 줄에 엮인 굴비…. 이 모든 게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지금도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40여년 전, 세계 미술계에 던진 예술가가 있다. 한국 실험미술 대표작가 이강소(75)다.
이 작가는 오리·사슴·집 등 알아보기 쉽고 색 또한 편안한 ‘쉬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에 앞서 1970년대 실험적인 미술로 세계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1975년 파리 비엔날레에서 전시관에 닭을 풀어놓고 그 흔적을 선보인 작품은 당시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40년 전 선구적인 질문을 던진 작가의 작품이 다시 한국에서 선을 보인다. 오는 10월 14일까지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이강소 개인전 <소멸>이다.
<소멸>은 1973년 작가의 첫 개인전에 소개됐던 작품명이기도 하다. 작가는 1973년 주점의 모든 탁자와 의자를 구입한 뒤, 이를 모두 개인전이 열리는 명동화랑으로 가져왔다. 자신에게 친밀한 장소였던 선술집의 경험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서 였다.
“나는 멍석만 깔 뿐”이라고 밝히는 작가는 상황만 제공하고 관객이 자유롭게 느끼길 원한다. “제목 ‘소멸’은 첫 개인전을 열던 당시 자신의 주소조차 잊어버린 것 같은 상황을 묘사한 것이었다”고 작가는 회상한다.
이 작가는 1965년 서울대 회화과 졸업 후 1970년대 미술운동가로 나섰다. 1975년 파리 유학길에 올라 과감한 실험예술을 선보였다. 1985년 표현주의를 시도하며 굵고 힘찬 필선의 ‘오리’ 그림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회화, 판화,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 사진, 도예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이번 전시는 ‘소멸’을 비롯해 작가의 1970년대 대표작으로 구성됐다.
지하 1층에 선보인 ‘갈대’는 1971년 직접 낙동강에서 찾은 갈대밭을 실내 전시장으로 옮긴 작품을 재연한 것이다. 마른 갈대를 박제해 상실과 죽음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전시장 1층 ‘소멸’ 선술집은 지난 9월 4일 오프닝 리셉션 장소가 됐다. 관람객들이 직접 막걸리와 안주를 먹으며 작품에 참여했다.
2층은 70년대 중·후반에 발표한 작품으로 구성됐다. 1975년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닭 퍼포먼스 작업 <무제-75031>도 다시 선을 보였다. 전시장에 설치된 말뚝에 닭의 발목을 묶어 닭이 정해진 반경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한 뒤, 횟가루와 닭의 발자국으로 닭이 돌아다닌 흔적을 유추할 수 있는 작품이다. ‘퍼포먼스’ 동안 닭은 전시장에 3일 동안 사육되고, 전시 기간 동안에는 닭의 흔적과 그 과정을 찍은 사진만 설치됐다.
자신의 몸에 물감을 묻혀 캔버스 천으로 닦아낸 흔적인 ‘회화’, 사과를 쌓아놓고 파는 ‘생김과 멸함’, 관 위에 걸린 굴비로 죽음을 은유한 ‘갈비’ 등도 작품으로 소개됐다. 이 모든 실험을 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 판단은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의 몫이다.
<이윤정 올댓아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