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것들이 겹쳐지는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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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타 오리자 작, 성기웅 각색·연출의 <과학하는 마음-숲의 심연>은 일반적인 연극 공연과는 조금 다른, 낯선 느낌의 연극이다. 일단 이 작품은 아프리카 오지에 위치한 유인원 연구센터를 배경으로, 이곳에 모인 다양한 국적과 서로 다른 전공 출신 연구자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공연 내내 이들 연구자들의 일상적인 대화와 연구 일과를 보여주는 무대를 통해 관객들은 연극무대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과학용어를 수없이 많이 듣게 되며, 또한 (평소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유인원 연구와 실험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들을 접하게 된다.

배경이나 소재뿐만 아니라, 공연과 연기 양식에 있어서도 <과학하는 마음-숲의 심연>은 다소 이질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공연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무대 위에는 배우들이 나와 게임을 하거나 신문을 보거나 자기들끼리 잡담을 나누고 있다. 공연이 시작되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떤 배우는 대사 없이 휙 무대를 가로질러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여러 배우들이 무대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화를 펼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장면에서는 아무도 없는 텅 빈 무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기도 하다.

/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이 공연의 매력은 바로 이렇듯 서로 다른 것들,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하나로 겹쳐지는 순간에 드러난다. 생화학, 생물학, 유전자공학, 심리학, 언어학 등 서로 다른 전공을 배경으로 각기 다른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인물들의 대화는 점차 이야기가 쌓여갈수록, 그 모든 학문이 서로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준다. 극중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영장류, 그 중에서도 침팬지와 보노보 등 유인원들의 습성 및 행동 양상은 얼핏 동물의 세계를 묘사하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연구실 사람들의 특성 혹은 행동과 겹쳐진다. 몇몇 대사와 상황 속에서 절묘하게 겹쳐지는 인간과 보노보의 모습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과연 우리가 그들보다 나은 존재라 할 수 있는지 자문하게 만든다.

이와 함께 자폐증에 걸린 아이를 위해 유인원 생체실험을 하려는 연구자, 연구센터를 에듀테인먼트 사업과 연계하려는 상사 주재원, 동남아시아 출신의 외국인 연구원과 탈북자 출신의 연구보조자 등 서로 다른 입장을 지닌 인물들이 미묘하게 대립하거나 겹쳐지는 순간들을 만들어내면서, 이 연극은 끊임없이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준다. 그리고 그 생각할 거리 또한 얼핏 보면 과학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과학보다는 철학이나 윤리학, 혹은 인문학에 가까운 문제들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인간과 사회를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고민을 무대 위에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과학하는 마음’과 ‘연극하는 마음’은 또다시 하나로 겹쳐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탈북자 출신의 연구보조원 은혜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자신의 막막한 심정을 고릴라의 ‘드러밍’ 행위를 흉내내어 전달한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던 심리학자 조기쁨 역시 자폐증 아이를 위한 연구와 과학 윤리 사이에서 갈등 중인 자신의 마음을 같은 방식으로 표현한다. 과거 아이를 잃은 아픔에서 치유되지 못한 채 부부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던 선임연구원 강인주 역시 ‘드러밍’으로 그들의 대화에 동참한다. 서로 다른 상황에서 서로 다른 심정으로, 그러나 똑같이 가슴을 두드리는 이들 세 사람의 모습은 그 자체로, 서로 다른 것들이 겹쳐지는 순간의 깊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2017년 1월 8일까지,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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