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물가 잡겠다면 매파, 놔둬도 된다면 비둘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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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71년 전이다. 친일파들이 꽤 괜찮은 시대였다고 평가하는 일제강점기. 그 시절 이땅의 청년들은 이름도, 말도, 꿈도 가질 수 없었다. 시인이되고 싶다는 꿈마저 사치였다. 청년 윤동주는 그 꿈을 꿨다고 부끄러워 했다.

이준익 감독의 <동주>는 시인 윤동주에 대한 이야기다. 동주에게는 평생의 친구이자 동지가 있다. 고종사촌인 송몽규다. 둘은 석 달 차이로 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고, 한 달 차이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었다. 동주는 몽규를 따라 서울의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고, 일본 유학을 결심한다. 동주는 동갑내기 여학생 여진에게 설렘을 느끼지만 창씨개명을 요구하는 엄혹한 시대상황은 이미 그를 짓누른다. 동주는 끝내 시인이 되지 못했다. 의사가 되기를 바란 아버지를 설득해 문과생이 되지만, 시집은 조선어 출판이 금지되면서 빛을 보지 못한다. 동주는 몽규와 함께 교토조선인학생 민족주의그룹사건에 연루돼 체포된다. 동주는 1945년 2월 후쿠오카 감옥에서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고 사망한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때였다.

동주와 몽규는 일본 식민지 지배에 분노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행동은 다르다. 동주는 독립투쟁에 목소리를 높이는 열혈 청년은 아니었다. 분노는 하지만 저항하지 못하는 답답한 마음을 시에 담는다. 반면 몽규는 행동파다. 중국 군관학교에 들어가 무력투쟁을 시도하고, 유학생들을 규합할 목적으로 일본 유학을 떠난다.

[영화속 경제]<동주>-물가 잡겠다면 매파, 놔둬도 된다면 비둘기파

일제에 저항하는 형태로 볼 때 동주가 ‘비둘기파’라면 몽규는 ‘매파’다. 비둘기파란 정치, 사상, 언론 또는 행동 등이 과격하지 않고 온건한 방법을 취하려는 사람을 말한다. 온순하고 평화적인 이미지의 비둘기에서 따왔다. 비둘기파가 본격 알려진 것은 베트남전쟁이다. 전쟁을 더 이상 확대시키지 않고 한정된 범위 안에서 해결할 것을 주장한 주화파(主和派)를 의미했다. 국내 정치에서도 온건파와 신중파는 종종 비둘기파로 불린다.

비둘기파의 반대가 매파다. 대외 강경론자거나 무력동원을 지지하는 주전파(主戰派)다. 1798년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이 처음 사용한 말이다. 국내 정치에서는 보수 강경파를 의미한다.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이민 반대 등을 내세우는 미국의 트럼프 신행정부는 매파 정부로 분류될 수 있다.

통화정책에도 비둘기와 매가 싸운다. 기준은 물가다.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성장을 도모하겠다면 비둘기파다. 반면 금리인상과 양적완화 축소를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면 매파다. 즉 물가를 잡겠다면 매, 물가를 잡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비둘기, 이렇게 이해하면 쉽다.

중앙은행에는 보통 매파가 많다.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 중앙은행의 본업이기 때문이다. 반면 재정당국에는 비둘기파가 많다. 높은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를 경영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물가안정을 중시해 매파로 종종 분류된다. 반면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저금리를 선호해 ‘비둘기파’로 본다. 물론 이 총재나 옐런 의장은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상황에서 판단한다”며 자신들은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ent·경제지표를 보고 통화정책 판단을 판단)라고 강조한다. 영화 속 동주는 일본경찰에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 너무 부끄럽고, 앞장서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 게 부끄럽다”고 말한다. 엄혹한 시절 매가 되지 못한 비둘기의 자기반성이다. 하지만 동주의 ‘부끄러움’은 시로 남아 한국인과 양심 있는 일본인의 마음을 오늘도 적시고 있다. 비둘기는 결코 매보다 약하지 않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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