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과 치유의 언어, ‘리플렉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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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가족사기단’과 부역자들에 의해 철저히 농락당한 국정, 도무지 믿기지 않던 ‘대통령 공범’ 의혹이 속속 사실화되면서 국민들의 허무와 허탈, 분노도 커지고 있다. “최순실은 박 대통령과 동급이자 공동정권이라고 생각했다”는 차은택의 7일 청문회 발언에선 말조차 잃었다. 아니, 너무 깊게 상처받고 좌절한 나머지 이젠 노도와 같은 일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겨질 그 무언가마저 두려워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랬다. 알고 보니 지난 40여년간 이어져온 장막의 시대(時代)는 망조의 나라를 받치던 시대(屍臺)였고, 우리가 그토록 죽을 힘을 다해 살아온 현실(現實)은 사실상 현실(玄室)이었다. 즉 희망을 말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되새기던 그 오랜 시간은 가공할만한 상실과 상망(喪亡)의 세계를 여는 단초였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김승영 작, 뇌, 저울,쇠사슬, 42x35x31cm, 2016

김승영 작, 뇌, 저울,쇠사슬, 42x35x31cm, 2016

그렇게 썩은 피같이 검붉고 내장처럼 뒤틀린 역사가 낱낱이 밝혀지던 지난 한 달, 그리고 전국의 광장과 일터에서 꺼지지 않는 촛불이 타올랐던 최근, 광화문광장과 지척인 사비나미술관에서는 김승영 작가의 전시 ‘리플렉션스’(Reflections)가 진행됐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은 채 독자적인 미학을 일궈온 작가로 평가받는 그는 이번 전시에 인간의 감정과 삶의 하중을 담아낸 신작 5점을 출품했다. 모두 고통과 성찰, 슬픔과 위로라는 메시지를 함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작품들은 비극적인 오늘을 대입해도 무리가 없는 것이기도 했다.

일례로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을 모델로 한 근작 ‘슬픔’은 해탈과 초월의 존재인 부처님을 슬픔과 고뇌가 가득한 도상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현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요구되는 성찰과 사유를 명시했다. 하지만 이 부처상은 마치 현 시국에 대한 국민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비탄(悲歎)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전시장 지하에 설치된 작품 ‘쓸다’는 작가가 해인사에서 채집한 비질 소리를 통해 마음 깊은 곳 부서지거나 못 쓰게 되어 남아 있는 감정을 쓸어버리라는 의미를 지닌 사운드 설치작품이었다. 그렇지만 해석하기에 따라 정화시켜야 할 불순하고 더러운 현재에 관한 예술적 치환이었다 해도 무방했다.

김승영 작, 슬픔, 브론즈, 88x42x50cm, 2016

김승영 작, 슬픔, 브론즈, 88x42x50cm, 2016

이밖에도 ‘인간의 감정을 속박한다’는 의미의 쇠사슬 더미를 저울 위에 올려놓은 오브제 작품 ‘뇌’는 본래 삶의 무게란 가늠할 수 없음을 나타내기 위한 레디메이드였으나 저울이 항상 ‘0’에 멈춰져 있다는 점에서 대상에 따른 구속의 헛헛한 무게감의 은유였고, 검은 물속을 끝없이 순환하는 육중한 쇠사슬로 구성된 설치 ‘Reflection’ 역시 억압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결코 침묵하지 않는 작금의 민심을 포박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김승영의 작품들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을 이식한 것이라 해도 그르지 않았다. 죄 많은 자들에겐 진실한 고해(告解)를, 그들로부터 상처받아야 했던 이들에겐 치유의 손길로 보듬는 작업이었다 해도 문제는 없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이 반드시 작가의 의중과 결을 같이하는 건 아니다. 허나 예술이란 결국 세상과 반응한 결과일 뿐더러 상상력을 덧대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에 목적을 둔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들은 되레 수준 높은 현실의식과 다름없다. 그야말로 실재의 반영 혹은 투영, 성찰과 치유의 ‘리플렉션스’였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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