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씨 하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백무산(1955~ )

이렇게 작은 풀씨 하나가
내 손에 들려 있다
이 쬐그만 풀씨는 어디서 왔나

무성하던 잎을 피우고
환하던 꽃을 피우고

마침내 자신의 몸 하나
마저 비워버리고
이것은 씨앗이 아니라
작은 구멍이다

이 텅 빈 구멍 하나에서
어느 날 빅뱅이 시작된다
150억년 전과 꼭같이
꽃은 스스로 비운 곳에서 핀다

이렇게 작은 구멍을 들여다본다
하늘이 비치고
수만리 굽어진 강물소리 들리고
내 손에 내가 들려 있다

‘풀씨 하나’는 ‘마침내 자신의 몸 하나마저 비워버’린 ‘작은 구멍’이다. 비워야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무성하던 잎’도 ‘환하던 꽃’도 비운 다음에야 비로소 씨앗이 된다. ‘꽃은 스스로 비운 곳에서 핀다.’ 비우는 일이 어디 쉽기만 할까. 하지만 비우는 일이 쉬운 사람도 있고 죽어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 고리탑탑한 내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면, 내 잘못을 인정하면 못할 것도 없을 텐데 참으로 갑갑하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시로 여는 한 주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