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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택(1957~ )

굳어지기 전까지 저 딱딱한 것들은 물결이었다
파도와 해일이 쉬고 있는 바닷속
지느러미의 물결 사이에 끼어
유유히 흘러다니던 무수한 갈래의 길이었다
그물이 물결 속에서 멸치들을 떼어냈던 것이다
햇빛의 꼿꼿한 직선들 틈에 끼이자마자
부드러운 물결은 팔딱거리다 길을 잃었을 것이다
바람과 햇볕이 달라붙어 물기를 빨아들이는 동안
바다의 무늬는 뼈다귀처럼 남아
멸치의 등과 지느러미 위에서 딱딱하게 굳어갔던 것이다
모래더미처럼 길거리에 쌓이고
건어물집의 푸석한 공기에 풀리다가
기름에 튀겨지고 접시에 담겨졌던 것이다
지금 젓가락 끝에 깍두기처럼 딱딱하게 집히는 이 멸치에는
두껍고 뻣뻣한 공기를 뚫고 흘러가는 바다가 있다
그 바다에는 아직도 지느러미가 있고 지느러미를 흔드는 물결이 있다
이 작은 물결이
지금도 멸치의 몸통을 뒤틀고 있는 이 작은 무늬가
파도를 만들고 해일을 부르고
고깃배를 부수고 그물을 찢었던 것이다

레오리오니가 쓴 <으뜸헤엄이>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작은 물고기들이 큰 물고기한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힘을 모아 큰 물고기를 쫓아버리는 내용입니다. 시인은 ‘지금 젓가락 끝에 깍두기처럼 딱딱하게 집히는’ 멸치에서 ‘두껍고 뻣뻣한 공기를 뚫고 흘러가는 바다’와 ‘그 바다에는 아직도 지느러미가 있고 지느러미를 흔드는 물결’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작은 물결’, ‘몸통을 뒤틀고 있는 이 작은 무늬’가 ‘파도를 만들고 해일을 부르고 고깃배를 부수고 그물을 찢었’다고 합니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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