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의 체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문태준(1970~ )

은밀한 시간에
근심은 여러 개 가
운데 한 개의 근심을 끄집어내 들고
나와 정면으로 마주앉네
그것은 비곗덩어리처럼 물컹물컹하고
긴 뱀처럼 징그럽고, 처음과 끝이 따로 움직이고
큰 뿌리처럼 나의 신경계를 장악하네
근심은 애초에 어머니의 것이었으나
마흔해 전 나의 울음과 함께 물려받아
어느덧 굳은살이 군데군데 생긴 나의 살갗처럼 굴더니
아무도 없는 검은 밤에는
오, 나를 입네, 조용히
근심을 버리는 방법은 새로운 근심을 찾는 것
빗방울, 흙, 바람, 잎사귀, 눈보라, 수건, 귀신도 어쩌질
못하네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 전체가 뒤숭숭하다. 통제되지 않은 권력으로 인한 비리는 까도까도 끝이 없다. 상상하지 못한 일이 줄줄이 이어진다. 국민은 ‘대통령 박근혜의 마음’이 오랜 세월 어떻게 움직였는지 겪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의 근심과 걱정을 덜어주거나 풀어주어야 할 사람인데 오히려 더해주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시인의 말처럼 근심은 ‘비곗덩어리처럼 물컹물컹하고 긴 뱀처럼 징그럽고, 처음과 끝이 따로 움직이고 큰 뿌리처럼 나의 신경계를 장악’한다. 당장은 괴롭고 힘들더라도 우리는 이 근심거리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똑똑히 지켜봐야 한다. 그래야 또다시 근심을 체험하지 않을 것이다.

<김시언 시인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2015)이 있음.>

시로 여는 한 주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