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성공시대>-히틀러의 ‘민주적인 독재정권’에서 배우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히틀러가 총리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우파 인사들은 좌파를 배제하고 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주기 싫다는 생각에 히틀러의 위험성을 애써 부인하면서 총리로 인선한다.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제정 헌법부터 현행 헌법까지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한다. 민주공화국에서 주권자인 국민은 대통령 또는 국회의원에게 자신의 주권 행사를 위임한다. 하지만 국민이 주권 행사를 위임한 사람이 아니라 그 껍데기를 앞세운 다른 사람이 실제 주권을 행사한다면….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의 표현처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믿을 사람이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것인가. 2014년 12월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 1위가 최순실이라고 말했을 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상상할 수 있었던 사람이 있었을까. 그저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는 측근을 과장하여 표현한 것이려니 할 수밖에. 그런 사람들이야 어느 정권에서도 있었으니 새로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었다.

<히틀러의 성공시대> 1권의 표지

<히틀러의 성공시대> 1권의 표지

여러 곡절 끝에 <한겨레신문>의 2016년 9월 20일자 보도를 시발점으로 본격적으로 최순실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순실이 관여한 미르와 K스포츠재단이 초고속으로 설립 허가를 받아 대기업으로부터 800억원을 모금하는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거나 최순실의 딸 정유연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그 자격으로 대학에 입학해 학점을 취득하는 과정에 특혜의혹이 제기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탐욕스런 대통령 측근의 비리 이상의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박근령 “언니를 최태민 손에서 구해달라”

판도라의 상자는 2016년 10월 24일 활짝 열렸다. 최순실의 최측근 고영태의 말을 빌려 최순실이 대통령의 연설문 고치는 일을 잘했다는 보도가 앞서 있었지만,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로 일축당한 상태였다. 그러나 최순실이 버린 태블릿 PC에서 대통령의 연설문 파일 등 유력한 증거가 발견되자 대통령은 의혹을 일부 시인하고 사과했다. 이제 최순실이 매일 청와대 보고자료를 전달받아 CF감독, 가방 제작업자와 함께 국정을 논했고, 오히려 대통령에게 지시를 했다는 진술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흘려들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2012년 12월 19일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람은 누구인가. 어떻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자조가 쏟아진다.

그런데 정말 아무런 예고 없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징조가 있었음에도 애써 무시해 왔던 것은 아닐까. 최순실의 아비 최태민이 영애를 이용하여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1979년 작성된 중앙정보부 보고서에 담겨 있고, 2007년 <신동아>에서도 보도된 바 있다.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 박지만은 육영재단 운영에 전횡을 휘두르는 최씨 부녀 때문에 1990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언니를 최태민의 손아귀에서 구해달라는 내용의 자필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했을 때 3공화국 2인자이자 사촌형부이기도 한 김종필 전 총리는 최태민의 자식까지 있는데 무슨 정치냐는 이야기를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예비후보는 최태민과 딸의 꼭두각시라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명박 캠프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최순실과 남편 정윤회가 국정농단의 대를 잇게 될 것이라고 공격했다. 최태민의 의붓아들 조순제는 박근혜 후보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대통령 자질에 대한 시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전여옥 전 의원은 2012년 1월 박근혜 후보의 서재 풍경을 묘사하며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분별하는 지적 인식능력이 부족하다고 혹평했고, 유시민 전 장관은 박근혜 후보는 이치에 밝지 않아 아랫사람에게 속기 쉬워 대통령이 되어선 안 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유난히 말실수가 잦았고, 원고가 주어지지 않은 대화에서는 뛰어난 식견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대선 토론회에서는 공약의 현실성을 따지는 질문에 “그래서 대통령 되려는 것 아닙니까”라고 강변하여 과연 국정을 운영할 철학이나 능력이 있는지 의심케 했지만, 상대 후보에게 당하는 게 불쌍하다거나 노무현 정권이나 좌파에게 정권을 내줄 수 없다는 반감이 겹쳐 토론회 이후에도 지지후보를 바꾸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차분히 생각하면 예상할 수 있었을까.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당위, 상대편에 대한 증오 혹은 비이성적인 연민이 그 모든 위험신호를 무시하게 한 것일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뒤탈을 막는 것이 가장 절실했던 걸까.

김태권 작가의 만화 <히틀러의 성공시대>의 한 장면

김태권 작가의 만화 <히틀러의 성공시대>의 한 장면

박정희의 향수 덕분에 철저한 검증 안 해

정상적으로는 정권을 잡기 어려웠던 사람이 상품성만 도구로 이용하여 영구적인 권력을 쥐려는 욕구를 가진 세력에 의하여 최고권력자가 되는 일이 처음은 아니다. <히틀러의 성공시대>는 듣보잡 트러블메이커였을 뿐인 아돌프 히틀러가 선거를 통하여 1933년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히틀러는 돌격대를 꾸려 좌파 집회를 습격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감옥에 가는 비호감 선동가였으나, 정치·경제·언론계의 거물인 후겐베르크는 좌파와 좌우연립정부를 증오하여 좌파를 척결할 도구로 히틀러를 지원하기로 하였고, 이 덕분에 히틀러의 나치당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다. 그래도 나치당의 집권은 요원한 일이었으나, 힌덴부르크와 슐라이허가 좌파를 제거하고 우파의 영구집권을 위하여 의회 해산을 반복하던 중 대공황이 겹쳐 많은 독일인들은 현실을 해결하지 못하는 기존의 정치권에 혐오를 느끼게 되었고, 불관용이 팽배해 가는 시대에 히틀러는 기존의 체제를 비판하는 새로운 정치인으로 이미지 메이킹하여 1932년 제1당으로 비약적인 도약을 이루게 된다. 그가 총리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우파 인사들은 좌파를 배제하고 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주기 싫다는 생각에 히틀러의 위험성을 애써 부인하면서 총리로 인선한다. 1933년 3월 21일 히틀러는 독일의 총리로 취임하고 긴 숙청과 입법권 박탈, 그리고 인류 최대의 비극이 이어졌다. 가장 민주적인 제도인 선거를 통하여 독재정권이 수립된 것이다.

1998년 경제위기 상황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영애님에 대한 철저한 검증 없이 제1야당 부총재로 화려하게 소환하였다. 2012년 북한에 대한 공포, 진보세력에 대한 증오, 혹은 자신의 권력 연장을 위하여 반드시 정권을 사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영애님의 절대적인 상품성 때문에 문제를 애써 눈감아 버렸던 것은 아닐까.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불관용 속에서 제대로 된 선택은 요원하고 결국 민주주의가 스스로 위기에 빠진 상황은 1933년 독일과 2016년 대한민국에서 반복되고 있는 걸까.

<최윤수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

만화로 본 세상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