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를 찾아서-절정과 마지막을 기억하는 ‘피크 엔드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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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아빠 ‘말린’은 아들 ‘니모’와 극적으로 상봉했다. 이번에는 도리다. 도리도 부모님 찾기에 나선다. 도리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렸다. “안녕 나는 도리야. 네 이름은 뭐니”라고 말해놓고 돌아서서는 “안녕 나는 도리야”라고 말할 정도다. 자신이 어디에 살았는지, 부모님의 이름은 무엇인지, 어떻게 헤어졌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 이런 도리가 과연 부모님을 찾을 수 있을까.

앤드루 스탠튼 감독의 <도리를 찾아서>는 <니모를 찾아서>의 후속작이다. 말린이 니모를 찾은 지 1년, 도리는 이들 부자와 산호초에서 행복하게 산다. 어느 날 빠르게 지나가는 가오리떼를 보자 부모님에게서 급물살 훈련을 받던 기억이 떠오른다. ‘캘리포니아 모로베이의 보석’이라는 지명까지 생각이 났을 때 도리는 가족을 찾기로 한다. 말린과 니모는 도리의 가족찾기에 동행한다. 알고 보니 캘리포니아 모로베이의 보석은 아쿠아리움이 있는 바다생물연구소다.

[영화 속 경제]도리를 찾아서-절정과 마지막을 기억하는 ‘피크 엔드 법칙’

<도리를 찾아서>는 잘 만든 해양생태 애니메이션이다. ‘크라운피시’ 니모와 말린, ‘블루탱’ 도리를 비롯해 ‘벨루가’ 고래 베일리, ‘고래상어’ 데스티니 등이 섬세하게 묘사된다. 문어는 심장이 3개가 있고, 벨루가는 초음파를 쓰고, 고래상어는 시력이 나쁘다는 상식을 알게 되는 것은 덤이다.

도리는 방금전에 한 말도 기억을 못할 정도로 단기기억상실증이 심하다. 그런데도 어떤 계기가 되면 간간이 오래된 기억들이 떠오른다. 급물살 훈련을 받던 기억, 조개를 따라 집으로 가던 기억, 부모님과 헤어질 때의 기억 등이 흩어진 조각처럼 불쑥불쑥 떠오른다.

인간의 기억력은 공평하지 않다. 어떤 강렬한 경험만을 선별해서 저장한다. 기억은 종종 사건의 절정기(Peak)와 사건의 마지막(End)을 기억하는데, 이를 ‘피크 엔드 법칙’이라고 부른다. 마지막 기억이 절정일 때라면 그 기억은 상당히 오래간다. 즉 기억은 주관에 따라 바뀌며, 경험의 절대적인 시간과는 관계가 없다. 1999년 대니얼 카너먼이 발표했다.

이가 썩어 치과에 갔다. A치과는 망치와 드릴을 쓰는 바람에 지독히 아팠다. 단 10분 만에 이빨을 뺐지만 몇 시간은 고생한 것처럼 느껴졌다. B치과는 의사가 서툴러 좀처럼 이를 빼지 못했다. 30분이 지나 의사는 결국 마취를 하기로 했고, 그 뒤 이를 뺐다. 두 환자에게 “다시 이를 빼러 치과에 오겠느냐”고 물으면 A는 “아니오”를, B는 “예”라고 말한다고 한다. 고통의 시간은 A가 10분으로, B의 30분보다 짧았다. 하지만 A는 극단적인 고통 속에서 이를 뺐고, B는 마취가 된 상태에서 이를 뺐다. 극단적인 고통을 기억하는 A는 또다시 치과치료를 받는 것이 두렵다. 반면 B는 길었던 고통은 잊어버리고 아프지 않은 마지막 상태를 기억한다.

연속극을 보면 에피소드의 마지막 순간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다. 그러고는 다음회를 예고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궁금증이 절정에 달한 시청자는 다음 방송을 기다리게 된다. 올림픽에서 때로 은메달리스트보다 동메달리스트가 더 행복한 것도 같은 이유다. 은메달은 마지막을 패해 짙은 아쉬움을 남기지만 동메달은 마지막을 승리해 좋은 기억으로 끝을 맺는다.

주식투자 때도 비슷하다고 한다. A주식은 1년 내내 꾸준히 올라 100만원의 수익을 남겼다. B주식은 계속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이다 마지막 한 달간 급상승해 90만원의 수익을 거뒀다. 이때 투자자들은 B를 더 매력적으로 본다.

‘피크 엔드 법칙’은 자기관리에도 힌트를 준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것이다. 정점에 있을 때 내려와야 자신에 대한 기억을 가장 아름답게 남겨놓을 수 있다. 도리는 문어 행크에게 “네 기억은 못잊을 것 같아”라고 말한다. 정말로 절박할 때(피크 때) 받은 도움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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