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아랍인>-무슬림, 그들과의 차이점을 알아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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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이슬람 세계에서 보낸 프랑스 작가 리아드 사투프의 자전적 만화다. 만화의 중심 인물은 작가 본인인 어린 ‘리아드’와 아버지 ‘압델 라작’이다.

나 자신과 타인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가는 일은 태어난 순간부터 숨을 거둘 때까지 인간에게 주어진 숙제인 것 같다. 진료실에서도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한다. 같은 상황을 각자가 얼마나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지 의아해하면서도,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사람이 얼마나 비슷하게 살고 있는지 신기해한다. 우리 사회도 낯선 존재를 마주하는 도전을 늘 받는다. 최근 서울대병원에 무슬림 기도실이 마련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러고 보니 도심의 주요한 장소에서 히잡을 두른 채 걷는 관광객을 보는 일도 흔해졌다.

<미래의 아랍인>은 시리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이슬람 세계에서 보낸 프랑스 작가 리아드 사투프의 자전적 만화다. 사투프는 유년기에 카다피 치하의 리비아를 경험하였고, 소년기는 하페즈 알아사드 치하의 시리아에서 보냈다. 만화의 중심 인물은 작가 본인인 어린 ‘리아드’와 아버지 ‘압델 라작’이다. 아버지 ‘압델 라작’은 시리아 시골의 별 볼 일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집안에서 유일하게 고등교육을 받은 인물이다. 프랑스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자신이 속한 세계로 프랑스인 부인과 어린 아들을 데리고 돌아갔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의 내면은 자연스럽게 몸에 밴 종교적·가부장주의적 관습과 성장 후 얻은 서구의 자유주의적 사고로 갈등했다. 아들 ‘리아드’ 역시 자라면서 가정 내에서 익힌 서구적 분위기와는 정반대인 권위주의적인 사회에 노출이 되면서 혼란을 겪는다. 만화는 어린 ‘리아드’가 조금씩 익혀 가는 ‘가부장’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한편, 어른 ‘압델 라작’의 마음 속 모순을 함께 고민하는 구조로 독자를 이끈다.

리아드 사투프 작가의 만화 <미래의 아랍인>의 한 장면. / 휴머니스트

리아드 사투프 작가의 만화 <미래의 아랍인>의 한 장면. / 휴머니스트

우리 사회가 이슬람 세계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01년 9월 11일 테러 직후라 생각된다. 여러 매체에서 다양한 분석이 쏟아졌고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한 출판물도 줄을 이었지만 여전히 낯설기만 했다. 이후로 몇 번의 전쟁, 아랍의 봄, 이슬람국가(IS)의 탄생과 반복되는 테러의 위협을 보면서 오히려 그에 대한 물음표는 더 커졌다. <미래의 아랍인> 속 어린 ‘리아드’의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지금 무슬림과 만나는 우리와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와 닮아 있는 만화 속 어린 ‘리아드’
만화 속에서 그려지는 하루하루는 권위가 지배한다. 처음 도착한 리비아에서는 독재자 카다피의 어록을 담은 <그린북>이 일상을 통제한다. 카다피가 국민들의 직업을 서로 바꾸도록 강제하는 법률을 공표하면서 가족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 모국 시리아에 도착해서 아버지 ‘압델 라작’이 처음 마주한 현실은 집안의 어른인 형이 자신 몫의 땅을 마음대로 팔아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직접 항의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집에서는 “명령은 내가 한다”며 아들에게 학교 갈 것을 강요한다. 동생이 생긴 뒤에는 “넌 장남이야. 장남은 권리가 많은 만큼, 동생들에 대한 의무도 커. 넌 동생을 보살피고, 동생이 무슨 나쁜 짓은 하지 않는지 지켜보고 보호해줘야 해. 아랍인들에게 장남이란 신성한 자리란다”라고 강조한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학교에 간 아들 ‘리아드’는 무시무시한 체벌과 차별을 통해 폭력의 공포에 길들여진다. 권위에 대한 집착은 끔찍한 결말을 부른다. 처녀의 임신을 가부장의 통제력 상실로 받아들이며 권위 회복을 위한 ‘명예살인’이 일어난다. ‘리아드’에게는 받아들이기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터키 남부의 도시 우르파를 여행하다 생긴 일이다. 민박집 주인은 보수적이라는 평을 듣는 쿠르드족 60대로 추측되는 터키인이었다. 사람 좋은 표정으로 얼마 전에 묵고 간 루마니아 커플이 이곳이 너무 좋아서 또 놀러 왔다며 자신의 집을 자랑했다. 그날 다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루마니아 커플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놀러 온 것은 맞지만 실은 지난번 여행 때 성곽이 있는 언덕에서 카메라를 도둑 맞았다는 것이다. 경찰에도 신고했지만 찾을 길은 없었고, 소중한 추억을 다시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동료 여행자들이 안타까움을 채 표현하기도 전에 민박집 주인은 격노했다. 모두가 당황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왜 저번에 그런 일이 있을 때 바로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느냐고. 자신이 알았다면 사람들을 동원해서라도 카메라의 행방을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렇다고 손님에게 화를 내다니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이곳을 지탱하고 있는 가부장제의 작동을 감지했다. 자신의 울타리에 들어온 사람은 모두 자신의 책임과 통제 하에 있어야 하는데 그 권위가 무너졌던 것이다. 식구가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도움을 청한 데다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야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주인의 입장에서는 체면에 먹칠을 한 것이다.

<미래의 아랍인> 한국어판 1권의 표지. / 휴머니스트

<미래의 아랍인> 한국어판 1권의 표지. / 휴머니스트

처음 만화를 읽으면서는 우리와는 아주 먼 곳의 이야기를 기대했다. 분명히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기록인데 의외로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어 놀랐다. 우리에게도 권위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부장제도의 미명 아래 가족 구성원이 희생하는 경험은 낯설지 않다. 무슬림 문화라 여겨지는 모습들은 사실 우리에게도 친숙한 가부장제나 권위주의의 또 다른 얼굴일 수 있다.

우르파에서 만난 모로코 청년이 떠오른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집트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고, 예멘에서 일하다가 다시 모로코로 돌아간 친구였다. 그러던 중 시리아로 가기 위하여 터키 남부로 온 것이었다. IS가 등장한 지 얼마 안 되었을 시기였는데, 청년은 ‘이슬람 형제단’에 합류하기 위해서라고 자신의 여정을 설명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한국에 돌아와 여러 매체를 통해 정황―국경을 넘기 위해 SNS로 연락을 기다리던 모습이나 원리원칙을 지키는 인간적인 사회를 찾겠다는 열망―을 정리해보니 아마 IS의 일원이 되었으리라 추측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숙소에서 내 얼굴을 보자마자 종교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먼 곳에서 온 내게 절대자 신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애썼다.

끔찍한 결말을 부르는 권위에 대한 집착
다시 만화로 돌아가서 아버지 ‘압델 라작’은 유럽에 남아 강단에 설 수 있었지만 굳이 리비아를 선택했다. 리비아를 떠나서도 프랑스에서 교수직을 찾는 대신에 고국 시리아로 돌아갔다. 스스로 무슬림이라 생각하지 않고 종교적인 사람도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이슬람 세계로 돌아가기를 선택했다. 현실은 그의 이상과는 멀었다. 아들이 수영장에서 튜브를 사달라고 조르는 중에, 다른 사람들이 가게를 습격하여 튜브를 몽땅 훔쳐가도 끝까지 품위를 지키며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 ‘압델 라작’에게는 그곳에 남을 필사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인 부인과 금발의 아들 때문에 꼬리표처럼 찾아오는 차별과 불편한 시선들을 감수하면서 말이다.

몇 번을 생각해 보아도 예의 바르고 똑똑한 그 모로코 친구가 선택한 길이 이해되지 않는다. ‘압델 라작’이 시리아에 계속 남아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3부작으로 예정된 <미래의 아랍인> 마지막 편이 출간된다면 작가의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너무 종교적인 설명으로 그들의 인생을 풀어내려 하지 않았나 돌이켜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만화를 읽으며 무슬림의 의미가 피상적으로 말하는 종교적 정체성만은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우리와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드는, 아직 설명할 수 없는 차이점이 그들의 중요한 가치일 수도 있지 않은가.

시간과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결론부터 내리고 행동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인가 보다. 어쩌면 편가르기를 통해 생존의 확률을 높여야 했던 선조들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이제 사회가 복잡해졌으니 우리도 조금 복잡하게 생각하면 어떨까. <미래의 아랍인>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헛갈린 상태를 좀 더 유지할 것을 허락하고 싶다. <송곳>의 명대사를 슬쩍 비틀어 인용해 본다. “서는 곳에 따라 공통점이 부각되기도 하고 차이점이 부각되기도 하는 법이다.”

<신재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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