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다>-전업주부는 커피도 외식도 금지된 사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어린이집에 아기를 맡기고 브런치 먹으며 수다를 떠는 아줌마에 대한 욕설들이었다. 전업주부는 가사와 육아가 ‘본업‘인데, 왜 그것을 다른 이에게 떠넘기려 하는지에 대한 말들이 난무했다.

10대가 저물던 즈음 친구들 사이에서는 ‘마피아’ 게임이 한창 유행이었다. 마피아 게임의 클라이막스는 단연 사회자가 선언하는 ‘밤’이었다. 사회자가 “밤이 깊었습니다”라고 일어나 이야기하면, 그저 게임일 뿐인데도 어쩐지 엄숙해지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마피아가 된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눈짓으로 한 명의 시민을 지목해 죽이고, 아침이 밝으면 시민들과 아무렇지 않게 뒤섞였다. 대개 마피아를 찾기 위해 조용히 머리를 굴리는 시민들과 달리 마피아들은 시민들의 사소한 몸짓들을 단서처럼 부풀리며 서로 간의 의심을 증폭시킨다. ‘나 방금 얘 옷깃 스치는 소리 들었어! 얘가 마피아야!’라는 식으로.

우는 아기를 맡기는 ‘독한 엄마’
오래전의 이야기를 갑작스럽게 꺼내는 건 육아 일상툰 <나는 엄마다> 때문이다. 원색적인 색감과 어디서도 보지 못한 독특한 그림체 때문에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았던 이 웹툰은 읽으면 읽을수록 감칠맛이 났다. 있는 그대로 폭발하고, 터져버린 자신을 우울의 골짜기 저 밑까지 떨어뜨리고, 그랬다가도 치맥 한 조각에 되살아나는 작가의 롤러코스터가 나와 똑같은 각도를 이루었던 탓도 있었다. 그런 데다가 ‘이런 걸까’ ‘저런 걸까’ 하며 생각의 방향을 한곳으로만 흘려넣지 않는 작가의 독백들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육아 또한 반추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아직 돌도 안 된 꼬맹이를 기르면서 회사에 다니는 내게 일상은 늘 버겁기만 했다. 어린이집 선생님께 우는 아기를 맡기고 돌아설 때, 주변에서 사뭇 걱정스러운 눈길로 “이런 아기가 벌써 어린이집을 다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특히 그랬다. 최근엔 교회에서 권사님이 우리 아기가 어린이집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곤 내게 “독한 엄마네” 하며 혀를 찼던 적이 있었다. 그 짧은 말 한마디에 애써 단단하게 다져온 내 일상의 지층 어딘가에서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두부 작가의 만화 <나는 엄마다>의 한 장면. / 다음 웹툰

순두부 작가의 만화 <나는 엄마다>의 한 장면. / 다음 웹툰

<나는 엄마다>는 그렇게 무너진 돌담들을 찬찬히 바라보고 다시 하나씩 주울 수 있도록 독려해 주었다. ‘엄마도 좋아하는 게 있는 게 당연하지, 엄마도 사람이니까. 엄마이기 전에 나는 나였으니까-’라며 작가 자신은 헤비메탈과 록을 좋아한다고 경쾌하게 고백하는 이 웹툰은 친구이자 다정한 언니 같았다.

근래에는 동감이 아니라 공감을 표하게 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회사가 아니라 집에서 일을 하는 프리랜서 워킹맘으로서 일-육아-가사의 분배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이었다. 프리랜서 재택근무자의 유연성이란 때로 정규 직장인인 파트너보다 다른 일을 쉽게 떠안을 수 있는 원인이 되는데, 이 작가의 경우가 딱 그랬다. 사실상 맞벌이임에도 집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작가가 늘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에피소드 내에서 작가는 이 불공평함에 대해 토로한다. “나는 프리랜서라 회식도 없다고!” 이 강렬한 외침 하나가 ‘프리랜서 엄마’의 비애를 컷 너머까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맞춤형 보육이 한참 전에 시행되었다면 나는 이 작가를 만날 수 있었을까. 물론 작가가 데뷔 이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는지 맡기지 않았는지는 작품에 나오지도 않지만, 이번 ‘맞춤형 보육’으로 불공정하게 기회를 빼앗길 사람들이 분명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당장 내 주변에도 있었다. 두 아이를 길러내면서 꾸준히 좋은 글을 써냈던 선배였다. 선배는 글에 대한 커리어를 잇기 위해 ‘종일형 요청 자기기술서’를 작성해 제출했지만, 이제는 6개월치 통장 사본도 내라는 이야기까지 통보 받았다. 글로 고정된 월 수입이 나지는 않았더라도 틈틈이 써 왔고 앞으로도 쓸 예정이었던 이 선배에게 너무나 자존심 상하는 행정이었던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맞춤형 보육이 워킹맘들에게 최적인 것도 아니다. <독박육아>에 따르자면, 정부가 아무리 종일반 지침을 내리더라도 급여나 규모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실제 민간·가정 어린이집에서 운영되는 건 ‘반일반’이다. 종일반을 시행하는 국·공립 어린이집은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 아기만 해도 아침 8시에 등원해 오후 3시에 하원한다. 그때부터는 또다시 맡길 곳을 찾아야 한다. 그러다가도 아기가 아프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아픈 아기를 어디에 맡길 수도 없고, 휴가를 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수족구에 걸렸을 때, 메르스가 유행했을 때에도 아이가 아픈 것보다도 어린이집을 못 보내게 되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내 상황이 말할 수 없이 속상했다”는 <독박육아>의 한 구절에 나 역시 깊이 공감했다.

그런데도 이 정책이 한창 논란이 되었을 때는 댓글마다 전업주부의 브런치가 톱 이슈였다. 어린이집에 아기를 맡기고 브런치 먹으며 수다를 떠는 아줌마에 대한 욕설들이었다. 전업주부는 가사와 육아가 ‘본업‘인데, 왜 그것을 다른 이에게 떠넘기려 하는지에 대한 말들이 난무했다. 그 안에서 전업주부들은 전업주부라는 이유만으로 마치 커피도, 외식도, 모든 것이 금지된 사람들처럼 함부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가사와 육아만을 위해 존재?
그 전업주부들은 다 어디에서 왔을까. 처음부터 가사와 육아만을 위해 존재했던 사람들이었을까. <나는 엄마다>의 작가도 처음부터 프로였던 건 아니었다. 아마추어 웹툰 리그에서 꾸준히 작품을 쌓아오다가 정식 연재로 발탁된 케이스였다. 물밑에서 노력하고 있는 그녀들의 발장구가 분명히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녀들 개개인을 뭉개고 짓밟아 욕먹어도 싼 하나의 추상체로 만들어버린다.

우리는 정책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와 궁극적으로 그 정책이 가야 하는 길이 어딘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전업주부들이 모여서 브런치를 먹느니 마느니 하는 건 마피아 게임에서 마피아가 은밀히 시민들 간의 싸움을 부추기는 방식일 뿐이다. ‘맞춤형 보육’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보육정책이 무고한 여성들의 가능성을 잡아먹는 동안, 결국 이를 통해 삭감된 예산은 다른 이름으로 마피아가 손을 댈 것이다. 마피아 게임에서 시민의 역할이란 참으로 미미하지만, 그가 가진 목적이란 실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우리는 또 다른 밤이 오기 전에 마피아가 죽이고자 점찍어 둔 시민을 한 발 앞서 살려내야 한다. 그리고 마피아의 검은 손을 낚아채야만 한다. 또 다른 밤이 도래해 누군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나면, 이제 다음 타깃은 바로 당신이다.

<조경숙 만화평론가>

만화로 본 세상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