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부와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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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벌려던 대학생 포함 4명 사망’. 2011년 7월 2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이마트 탄현점 기계실에서 냉동기 보수작업을 하던 노동자 4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언론들은 대부분 제2보를 이렇게 내보냈다. 제1보는 ‘이마트 탄현점 인부 4명 사망’이었다. ‘인부들의 죽음’은 보통 관심을 못 받지만 사고 장소가 국내 최대 유통업체 이마트여서 취재진이 몰렸다.

희생자 중에 서울시립대 휴학생 황승원씨(당시 22세)가 있었다. 군 제대 후 다음 학기 등록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다 한 달 만에 변을 당했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부들의 죽음’은 ‘대학생의 죽음’으로 격상됐다. 언론이 앞장섰다. “이마트 일산 탄현점에서 질식사한 노동자 중 한 명이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하던 ‘가난한 휴학생’으로 밝혀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야당 정치인들과 시민사회단체는 무거운 등록금으로 대학생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말할 때 이 사고를 꺼냈다. 서울광장에서는 매일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해 ‘국가장학금’,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등이 마련됐다. ‘반값등록금’에 맞춰 이슈화가 진행되는 동안 숨진 3명의 존재와 황씨를 포함한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직접적인 원인은 지워졌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현장에 시민들이 놓고 간 추모의 국화꽃과 포스트잇이 매달려 있다. / 서성일 기자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현장에 시민들이 놓고 간 추모의 국화꽃과 포스트잇이 매달려 있다. / 서성일 기자

‘누군가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한다’는 문제만큼 한국인들을 분노하게 만들 수 있는 이슈는 드물다. 동료 시민의 교육받을 권리 앞에서는 이처럼 뜨거운 사람들이 역시 동료 시민인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보내는 무덤덤한 반응은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교육문제에 관한 공분조차 실상은 이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학 나올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하지만, 그 기회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낙오됐거나 자발적으로 다른 길을 택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불평등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한 제 탓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인부’들의 죽음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법원도 노동부도 노동자를 숨지게 한 기업에 약한 책임만 묻고, 세월호 참사 이후 ‘놀러가다 죽은 아이들에게 무슨 보상이냐’는 막말이 나온 이유다. 이마트 사고의 원인은 냉매가스에 의한 질식사. ‘인부’들에게 안전마스크라도 지급했다면 피할 수 있었다.

19세 노동자가 숨진 구의역 9-4 승강장은 조금 달랐다. 한국 사회를 작동시켜온 오래된 원리를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거부한다는 메시지로 가득 차 있었다. 황승원씨를 다시 떠올린다. 공부하려 했던 대학생, 위험에 내몰렸던 노동자, 누구와도 대체 불가능한 인간. 숨진 모두가 그러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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