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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요구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시민단체 회원. / 김정근 기자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요구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시민단체 회원. / 김정근 기자

‘도둑이 소나 양, 당나귀, 돼지, 염소 중 하나라도 훔쳤으면 10배로 배상해주어야 한다. 배상해줄 돈이 없다면 사형당할 것이다.’ 기원전 1750년쯤의 함무라비법전에 나온다는 이 구절은 징벌적 손해배상의 한 원형으로 여겨진다. 옥스포드 사전을 보면 ‘징벌적(punitive)’이라는 낱말에는 ‘처벌’의 뜻과 함께 세금이나 벌금이 극도로 높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아무리 잘못해도 손해만큼만 갚아주면 된다면? 다른 누군가의 모방범죄를 조장하는 역효과를 부르기 십상이다. 안 걸리면 그만이고 재수 없이 걸려도 원주인에게 돌려주면 끝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 대표적 징벌적 손해배상 사례는 1992년 미국 맥도날드의 커피 화상 사건이다. 79세의 스텔라 라이벡 여사는 커피를 산 뒤 차에서 쏟았다가 3도 화상을 입어 수술을 받았다. 직접피해액은 16만 달러였고, 배심원단은 무려 270만 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결정했다. 부담을 느낀 판사가 48만 달러로 낮추기는 했다. 이 사례의 진짜 교훈은 사실 징벌적 배상이 아닐 수도 있다. 화상 직접피해로만 2억원 가까운 배상을 했다는 게 우선 중요하다. 한국 사회라면 고작 수십만원 나올까. 미 미주리주 연방법원은 지난 5월 초 존슨앤존슨의 파우더를 썼다가 암에 걸려 난소 적출 수술을 받은 한 여성에게 실제 피해배상금(전보배상금)만 500만 달러 지급을 명령했다. 10배인 징벌 배상까지 따지기도 전에 우리로서는 놀라운 수준이다. 한국에서는 사실 이런 기본부터 바로잡는 게 더 절실해 보인다.

전보배상금 수준을 현실화하고, 무엇보다 위자료를 대폭 높일 필요가 있다. 제 자녀가 죽임을 당했는데 위자료가 고작 1억원 안팎이라면 판사들부터 내심으로 수긍할까. 7월 15~16일 ‘불법행위 유형에 따른 적정한 위자료 산정방안’을 주제로 여는 ‘2016 전국 민사법관 포럼’이 새삼 주목된다.

남들보다 나은 제품을 만들어내서 목돈을 두둑이 챙기려는 ‘숭고한 욕망’이 세상을 더 편리하고 재미나게 만들어온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공정한 게임을 전제로 한다. 너도나도 반칙으로 욕망을 채운다면? 밀림 같은 만인의 투쟁 상태로 돌아갈 위험이 높다. 그 상징적인 사건들이 세월호 침몰이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다. 무늬만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집단소송제나 입증책임 완화 같은 제도 보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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