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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AOA 멤버 설현이 기자회견에 나와 최근 불거진 역사의식 논란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 이선명 기자

걸그룹 AOA 멤버 설현이 기자회견에 나와 최근 불거진 역사의식 논란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 이선명 기자

“지금 서양 세력이 동양으로 뻗쳐오는 환난은 동양 사람이 일치단결해서 극력 방어함이 최상책이라는 것은 어린아이일지라도 익히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무슨 이유로 일본은 이러한 대세를 돌아보지 못하고 같은 인종인 이웃나라를 치고 우의(友誼)를 끊어 스스로 방휼지세(蚌鷸之勢·조개와 도요새가 서로 물고 물리며 다투는 형세)를 만들어 어부를 기다리는 듯하는가. 이로써 한·청 양국인의 소망은 크게 깨져 버리고 만 것이다.” 1909년 안중근 순국 전 뤼순 감옥에서 남긴 <동양평화론>의 한 대목이다. 한·중·일 3국이 힘을 합쳐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을 막아야 하는데 동양국가로서의 연대를 깨버린 일본에 대한 배신감이 나타나 있다. 안중근은 “동양의 수억 황인종 가운데 수많은 뜻있는 인사와 정의로운 사나이가 어찌 앉아서 수수방관하며 동양 전체가 까맣게 타죽는 참상을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라며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이유를 밝힌다. 그는 스스로를 ‘동양 수억 황인종 가운데 하나’로 지칭했다. 민족주의자라기보다 반제국주의에 기반한 국제주의자에 가깝다. 인종주의의 영향도 받았다.

안창호는 1907년 비밀조직 신민회를 결성한다. 105명 이상이 가담한 이 거대 조직의 목표는 ‘공화국 건설’이다. 독립운동의 목표가 조선왕조 복원에서 인민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공화국 건설로 바뀌었다는 점이 ‘신민회’가 가진 역사적 의의다. 1919년 3·1운동의 결과로 탄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아직 건설되지 않은 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하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무하고 일체 평등하다”고 밝힌다. “대한민국의 인민은 신교,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신서, 주소 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향유한다”고도 선언한다. 1930년대 민족혁명당 강령에 이르면 ‘토지분배’와 ‘노동운동의 자유’도 요구한다. 1944년 광복을 한 해 앞두고 대한민국 임시헌장에는 정치·경제·교육의 균등함을 지향하는 ‘3균주의’가 반영돼 있다. 일제를 물리치고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하는 독립운동가들의 고민이 구체화돼가는 과정이다. 독립운동의 형태는 ‘거사’ 외에도 다양했고, 독립운동가들의 이상은 ‘반일’보다 훨씬 더 풍부했다.

걸그룹 AOA의 멤버 설현과 지민이 한 케이블방송에 출연해 안중근의 사진을 몰라봤다는 이유로 “역사의식이 없다”는 비난을 받았다. 설현과 지민은 눈물을 흘리며 강제로 사과 기자회견을 열어야 했다.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세상 어디에도 타인이 타인을 함부로 비난해도 되는 사회란 구절은 없다. 억지로 사과하는 모습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표방했던 ‘양심의 자유’와 어긋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만만한 걸그룹들에게 손가락질하고 강제로 기자회견장에 끌고 나오는 사람들이야말로 ‘역알못’(역사를 알지 못함)이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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