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조 사내유보금과 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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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 회원들이 4월 21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 회원들이 4월 21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요즘 기업의 ‘구조조정’이 화두다. 구조조정을 곧 사람 자르기로만 인식한다면 짚어볼 점이 있다. 당장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은 3000명 넘게 직원을 내보낸다고 했다. 삼성그룹 주요 15개 계열사에서 2014년 말과 지난해 말 사이 회사를 떠난 직원이 약 8000명이나 됐다. 임원과 나머지 수십 개 계열사까지 더하면 숫자는 1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당장 급한 대로 자르기 편한 비정규직 노동자 위주로 쫓겨났다는 것도 통계로 드러났다. 반대로 늘릴 때도 비정규직 위주였다.

어떤 기업에서 일을 시킬 만한 젊은 인재가 명퇴수당 등을 챙겨서 고시를 준비하겠다거나 창업하겠다며 회사를 나가겠다고 해 놀라움과 걱정이 교차했다는 얘기가 재계에 회자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회사에 전망이 잘 안 보인다는 뜻이다. 경기 불황이 가장 큰 이유인 것은 분명하지만 정부나 기업이 방향을 잘못 잡은 것 또한 사실이다. 새 먹거리 사업을 창출하지 못해 투자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 다수 국내 기업은 그동안 돌다리만 두드리다 늦거나 아예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징표가 사내유보금이다. 에프앤가이드는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총 1849개사의 사내유보금이 2014년 1125조원에서 1229조원으로 104조원(9.2%) 늘었다고 집계했다. 대차대조표의 이익잉여금과 자본잉여금을 더한 것이 사내유보금이다. 어쨌든 이익의 상당수를 가지고만 있다.

기업들이 미뤄온 구조조정, 감원에 나서면 가뜩이나 줄어든 수출로 힘들어진 경제에 돌파구로 여겨져온 소비진작은 강 건너가게 된다. 수만명 실직자가 쏟아져나오면 그 여파는 다시 기업들의 매출 정체나 감소로 돌아올 게 뻔하다. 노동시간 줄이기 등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도 한 대안이다.

특히 잘나갈 때는 사업 조정을 제대로 못하다가 꼭 어려울 때 나서는 행태는 비판받을 만하다. GE가 가전부문을 매각하는 것도 구조조정이지만 이익을 낼 때 이뤄진다. ‘기업소득환류세’라는 게 있다. 기업 소득을 사회로 돌려 경기를 부양하려는 목적으로 소득 중 투자, 임금 증가, 배당에 사용하지 않은 금액에 과세하는 제도다. 2015년 결산부터 2017년까지 3년 한시로 시행된다. 그러나 지난해 첫 해에 이 세제가 배당을 크게 늘리는 데 기여하고 투자 확대에는 효과를 못 거뒀다는 지적이 나왔다.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는 야당의 사내유보금 관련 법인세 인상 요구에 “닭(기업)을 살려서 알을 먹어야지 닭을 잡아먹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금은 기업의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할 때”라는 이유였다. 모이(유보금)는 잔뜩 쌓아두고 알을 잘 낳지 않는 닭이 다이어트(감원)부터 하려고 나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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