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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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특별담화를 발표한다고 했다. 혹시나 기대했다. 필자는 고등학생이었다. 마침 쉬는 시간에 특별생방송을 봤다. 기대는 큰 실망으로 돌아왔다. 순진했다. 그는 그것이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임기와 현재의 국가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내린 ‘중대한 결단’이라고 했다. ‘평화적인 정부 이양’과 ‘서울올림픽’이라는 양대 국가 대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낭비하는 소모적인 개헌 논의를 지양할 것을 선언한다”고 했다.

4·13 호헌조치. 말이 좋아 호헌(護憲), 헌법수호이지 당시 야당과 재야단체들이 요구하던 직선제 개헌은 받아들일 수 없고, 자신이 대통령에 등극한 체육관 선거 방식으로 자기 후계자를 뽑겠다는 것이다. ‘선언한다’는 것은 또 뭔가. 자신의 말이 곧 법이니 이걸 어긴 자는 각오하라는 엄포 아닌가. 1987년이었다. 서슬 퍼런 선언에 며칠은 조용한 듯했다. 하지만 다시 불길은 살아났다. 더 크게. 두 달 뒤인 6월 10일. 마침내 그날이 왔다. KBS 저녁 <9시뉴스>에서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노태우 장관을 선출했다는 소식을 전하던 박성범 앵커의 얼굴이 험상궂게 굳어졌다. 서울시청에서 ‘폭도들’이 지하철을 탈취했다는 소식이었다. 1987년 6월항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항쟁 기간 내내 가장 많이 외쳐진 구호는 “호헌 철폐 독재 타도”였다.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국민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국민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9년이 지났다. 4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빨간 옷을 입고 투표소에 들어서는 사진이 인터넷에 떴다. 4일 전인 8일 충북, 전북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할 때도 빨간 옷을 입어 논란이 되었다. 때마침 그가 방문한 지역이 총선 격전지였다. 선거 전날 열린 국무회의 자리에서는 이 논란을 의식했는지 박 대통령은 파란 옷을 입었다. 대신 그는 또 ‘19대 국회 심판론’을 말했다. “당면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기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민생안정과 경제활성화에 매진하는 새로운 국회가 탄생해야만 한다.” 꾸준했다. 1년 전 6월 25일 국무회의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을 해주셔야 할 것입니다.” 당사자가 아닌데도 낯이 뜨거웠다. 선거 기간 중에는 새누리당 공천을 못 받은 사람들은 대통령의 ‘존영’을 반납해야 한다는 엄포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29년 전 품었던 것과 똑같은 의문. “저 사람은 정말 자기가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번에는 그 답을 얻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 말씀대로 ‘국민들께서’ 투표로 답했다. 개표방송을 보기 위해 밤을 꼴딱 샌 새벽, 배달된 신문의 1면 헤드라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박근혜 정권 심판 당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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