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효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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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가 권리라고 하는데, 투표해도 뭔가를 누린다는 느낌보다는 다들 ‘투표해야 된다’고 떠들어대니까 마지못해 하는 느낌이거든요.”

20대 총선을 앞두고 각 지역의 총선 격전지를 찾을 때마다 매번 이와 비슷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 투표를 해도 자신이 정치에 일정한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느낄 수 없다는 소리다. 이런 상황에서 후보들이 내건 현수막만큼이나 쉽게 눈에 띄는 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 독려 캠페인은 잔소리를 넘어 강요로까지 느껴진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투표하겠다’고 응답한 비율보다 늘 실제 투표율이 더 낮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이석우 기자

/ 이석우 기자

전국적으로 유명한 거물 정치인이나 혹은 지역에 오랫동안 뿌리를 박고 여러 차례 도전한 정치인들이 맞붙어 치열한 대결을 펼치는 선거 격전지에서도 후보들에게 관심과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적지않다. 나아가 후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거와 투표라는 제도 자체에 의문을 품는 유권자들의 의견도 많이 듣는다. 기사 작성 방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무관심층’이나 ‘부동층’이라는 표현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모두가 귀중한 유권자의 정치적 의견인 것이다. 한 시민은 “투표라는 건 표를 받았으니 이제부터는 의원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구색 갖추는 절차”라는 신랄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대의민주주의 방식에서는 유권자들의 대표자가 선출됐다고 해서 그가 모든 유권자들의 의견을 대변 또는 반영할 수는 없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그 대표자에게 반대표를 던진 사람은 물론이고, 표를 던지지 못한 유권자의 의견도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정치과정에서 자신이 소외됐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정치의 결과가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보다 자신이 정치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극도로 적기 때문에, 즉 정치 효능감이 낮기 때문에 다시 투표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거리와 시장, 정류장 등 생활공간 주변에서 만난 유권자들 중 투표를 아예 하지 않겠다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일하는 곳을 떠날 수 없는 등의 이유로 투표하기 어렵다는 유권자들을 빼면 대부분은 투표를 통해서든 어떻게든 정치가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라고 있었다. 다만 지금의 선거와 투표만으로는 정치 효능감을 높이기가 쉽지 않다는 무거운 경고가 나왔을 뿐이다. 20대 국회에서는 민심을 보다 적시에 유연하게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할 수 있길 기대한다.

<김태훈 기자 ana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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