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친구 죽음 죄책감으로 방황하는 ‘프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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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소꿉친구들은 언제 만나도 반갑다. 함께 물장구치고 숨바꼭질하고 놀며 아까시 하얀 꽃잎을 따먹던 그 추억은 유난히 아름답다. 하지만 옛 추억이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폭력이나 죽음, 이별로 마무리된 기억이라면 두고두고 상처가 될 수 있다.

나가이 타츠유키 감독의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는 후자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뭉쳐 다니던 6명의 단짝 친구들이 있다. 남자 셋, 여자 셋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무리를 ‘초평화 버스터스’라고 이름 짓고, 숲속 자신들만의 비밀아지트를 갖고 있다. 여름 어느 날 팀의 리더인 진땅은 이나루로부터 ‘멘마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진땅은 부끄러움에 “호박 같은 멘마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흰소리를 한다. 멘마는 부끄러움에 뛰쳐나갔다가 사고를 당한다. 충격을 받은 아이들은 자책하며 뿔뿔이 흩어진다. 5년 뒤 진땅 앞에 멘마의 영혼이 나타난다. 멘마는 친구들 모두와 함께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 싶다고 한다. 진땅은 친구들을 모은다.

[영화 속 경제]<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친구 죽음 죄책감으로 방황하는 ‘프리타’

멘마가 죽은 뒤 진땅은 계속 방황을 한다. 학교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집에 처박혀 온종일 전자오락을 하며 지낸다. 머리는 푸석 푸석, 눈은 퀭한 진땅을 보며 이나루가 말한다. “뭐 또 알바를 늘렸어?” 진땅이 답한다. “엉, 막일이 벌이가 좋더라.” “얼굴이 엉망이야.” “엉, 잠을 못 잤거든.”

진땅은 전형적인 ‘프리타’다. 프리타란 ‘프리 아르바이타(free arbeiter)’를 줄인 일본식 영어 합성어다. 고정직업 없이 2~3개의 겹치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취미활동에 몰두하며 자유롭게 사는 사람을 말한다. 일본 경제가 불황에 빠지기 직전인 1980년대 말 한 아르바이트 정보지에서 유래된 말이다. 기성세대가 지향해온 조직사회를 거부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문화현상처럼 인식됐다. 하지만 1990년대 일본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종신고용 신화가 무너지고 비정규직이 급증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취업난에 프리타가 속출하면서 사회문제가 됐다. 무력한 청년들을 의미한다는 점에서는 니트(NEET)족도 의미가 통한다.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란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한다. 1990년대 영국 등 유럽에서 처음 나타났고 일본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프리타와 니트족이 한 세대의 특징으로 떠오르면서 ‘사토리 세대’가 만들어졌다. 사토리 세대란 1980년대 후반~199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로 돈벌이나 출세에 관심이 없는 젊은이들을 말한다. 사토리는 ‘깨달음, 득도’라는 뜻이다. 마치 득도(得道)한 것처럼 욕망을 억제하며 사는 젊은 세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멘마의 영혼이 나타나기 전까지 진땅은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혼자 집에 머문다. 심지어 노래방도 안 간다.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들을 가리켜 ‘히키코모리’라고 부른다. 1990년대 은둔형 외톨이가 많이 나타나면서 부각됐다. 히키코모리는 ‘틀어박히다’라는 뜻의 일본어다. 한국에서 말하는 ‘방콕’족과 의미가 비슷하다. ①사람들과 대화하기를 꺼리고 ②낮에는 잠을 자고 밤이 되면 일어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에 몰두하고 ③자기혐오나 상실감 또는 우울증 증상을 보이며 ④부모에게 응석을 부리고 심하면 폭력까지 행사하는 증상이 6개월 이상 계속되면 히키코모리라고 일본 후생성은 밝혔다. 히키코모리 중에는 부모에 얹혀사는 젊은이도 많다. 이를 ‘파라사이토 신구루’라 부른다. 식객(Parasite)과 독신(Single)을 합친 단어다. ‘캥거루족’과 의미가 비슷하다.

멘마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모인 진땅과 친구들은 비로소 과거의 아픔을 하나씩 치유해간다. 진땅은 히키코모리와 프리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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