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로스트>-고통은 용기 내어 맞설 때 치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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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식은 돌아오지 않는다. 단지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살아도 자기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채로 2년여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묻으려고 한다.

<닥터 프로스트>(네이버 웹툰)의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들’ 편에서는 수학여행을 가던 중 발생한 선박 침몰사고에서 생존한 고등학생이 등장한다. 한 번도 사고 난 배의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누구나 뒤집혀져 가라앉는 배의 파란 뱃머리와 “가만히 대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선내 방송을 통해서 그것이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생존한 아이는 같이 나오지 못한 친구에 대한 죄책감으로 중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있다. 만화는 아이가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꺼내어 극복하고, 친구 어머니가 자살하려는 것을 막아 죄책감의 고리를 끊어내면서 치유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당장은 아파서 외면할 수밖에 없더라도 결국은 피하지 않고 용기 내어 맞설 때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종범 작가의 만화 <닥터 프로스트> 중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들’ 편의 한 장면.

이종범 작가의 만화 <닥터 프로스트> 중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들’ 편의 한 장면.

친구들을 위해 증언에 나선 아이들
실제로 세월호에서 살아 나온 아이들은 고통을 회피하지 않았다. 트라우마 피해자에게는 사고 상황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상처가 될 수 있었지만, 여러 번 반복된 사정청취 때 최선을 다해 그날 있었던 일들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증인으로 신청된 22명의 아이들은 부모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법정에 출석해서 자신이 겪은 참상을 증언했다. 세월호가 뒤집힌 순간 물 위로 떠오르다가 많은 사람들이 한순간 복도로 쓸려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못했던 그 광경을. 서로 도와 가면서 겨우 복도로 빠져 나와 같이 구조를 기다렸지만, 차례로 빠져 나오다가 비상구 안으로 바닷물이 몰아쳐 뒤에 있던 친구들은 더 이상 나오지 못했던 그 순간들을.

건장한 화물기사들도 담담하게 증언하다가도 구조하다가 두고 나온 아이들이 살려 달라고 했었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면서 눈물을 흘렸을 정도이니 어린 아이들, 그것도 친구와 선생님을 잃은 아이들에게 그 과정이 힘들지 않았을 리가 없다.

정말 씩씩하게 증언하다가 “어른들을 믿고 기다렸는데…”라면서 울음을 터뜨린 아이도, “저는 운동도 잘 못하고 거기서 살아나올지 몰랐어요”라면서 곧 쓰러질 것만 같았던 아이도 모두 그 날의 괴로움을 재현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친구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서면서. 그랬기에 선장에 대한 살인죄와 해경 123정장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인정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피해자인 유가족은 사고 못지않게 이후 사건 수습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사고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 8시48분쯤부터 아이들은 가족에게 전화해서 사고가 났음을 알렸고, 9시50분쯤에는 모든 학부모에게 사고 발생 사실이 통보되었다. 전원 구조되었다는 보도가 곧 나왔지만, 어쩐지 연락은 되지 않는 아이들. 부모들은 여러 곳에 문의했지만 누구도 속 시원히 대답해 주지 않아 버스를 대절해 진도로 내려갔다. 5시간 넘는 길 마음을 졸여가면서. 그 길 끝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이가 아니라 탑승자 수도, 생존자도 확인되지 않은 아수라장이었다.

에어포켓 운운하면서 지상 최대의 구조작전을 펼친다고 알려졌던 밤. 부모들이 직접 배를 타고 나가 목격한 것은 아무런 구조활동도 없이 고요히 흘러가고 있던 시간, 거짓으로 뒤덮여 있던 시간이었다.

다시 한 번 ‘상처’를 두 눈으로 직시해야
거짓은 계속되었다. 대통령이 진도체육관을 방문했던 날,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잠수사가 500여명 투입되었다고 보고를 했고,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은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정정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원이 없게 하겠다고 눈물을 흘리던 대통령은 선거가 끝나자 부모들을 청운동 길거리에 76일 동안 방치하였고, 국회에서 그들이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외면했다. SNS에서는 가족들을 음해하는 글들이 배포되었고,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요구는 온갖 비난과 모멸의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중요한 질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로 일관하는 피고인들을 보면서 분통이 터져도 재판을 계속 방청했고, 싸늘한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았다. 소주 2병은 마셔야 잠을 잘 수 있는 상황에서도 놓쳐 버린 진실을 찾기 위하여 사고 증거와 기록을 읽고 또 읽었다.

죽은 자식은 돌아오지 않는다. 단지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살아도 자기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 채로 2년여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묻으려고 한다. 세월호 참사 직후 다중인명피해범죄의 가중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부 발의되었지만, 19대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될 예정이다. 기업이 안전관리에 소홀하여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경우 경영책임자를 형사처벌하도록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국회는 세월호 청문회 장소를 제공하지 않았고, 유력 방송사들은 중계는커녕 보도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특검은 무산될 가능성이 농후해졌고, 특별조사위원회는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활동하지 못했던 기간까지 법상 활동기간에 포함되어 성과 없이 종료될 위기다.

세월호의 현장 구조 책임자인 해경 123정장이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처벌됨으로써 국가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 따라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을 때에는 이 법에 따라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는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손해를 배상할 법적 의무가 있음이 명백해졌지만, 세월호가 지겹다고 고개를 돌려 버린 사람들에게는 “수학여행 가다가 애들이 죽은, 국가와는 상관없는 교통사고”로 기억될 것이다.

다시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위직만 처벌받았을 뿐이라서 형식적인 안전 검사, 출항 보고는 계속될 것이다. 사업주는 이익에 눈이 멀어 평형수를 빼내고 과적을 할 것이고, 구조 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해양경찰이 올 때까지 구호조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VTS는 사고 발생을 제때 파악하지 못할 것이고, 현장 구조책임자의 최대 관심사는 구호 자체가 아니라 윗선 보고가 될 것이다. 우리가 이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회피해 버린다면 말이다.

“트라우마를 비롯한 우리들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덮어놓고 잊는 것도 아닌, 무조건 그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우리 모두가 스스로의 상처에 직면할 수 있을 만큼 괜찮아졌을 때 다시 한 번 그 상처를 두 눈으로 직시하고 넘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만화의 이 마지막 대사는 마음속에 오래도록 울림으로 남는다.

<최윤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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