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트>-공급과잉 하락장의 대명사 ‘베어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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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개척의 역사는 사냥의 역사다. 수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총을 놓지 않는 데는 이런 역사성이 배경이 된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미국의 전설적인 모험가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의 1823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배경은 눈 덮인 로키산맥이다. 휴 글래스는 한 모피회사에 고용된 사냥꾼이다. 어느 날 인디언 ‘아리카라족’의 습격을 받고 철수하다 회색곰을 만난다. 회색곰에 공격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은 그는 철수대열에서 낙오된다. 사냥꾼 팀의 리더인 대위는 글래스가 죽기 전까지 돌보고, 죽으면 장례를 제대로 치러주는 조건으로 거금을 내건다. 글래스의 라이벌이었던 피츠제럴드가 이를 수락하지만 끝내 글래스를 내버려두고 떠난다. 이 과정에서 글래스의 아들 호크도 죽임을 당한다. 굶주림과 부상의 고통, 추위에 시달리면서 글래스는 4000㎞ 넘게 떨어진 기지로 복귀를 시도한다. 복수를 위해서다.

19세기 말 금광과 석유산업이 개발되기 전 미국 서부의 대표적인 산업은 모피산업이었다. 원주민과 유럽인들은 모피와 각종 금속도구를 물물교환했다. 유럽에서 모피 수요가 확대되고, 유럽인들이 직접 사냥에 나서면서 양측은 적대관계로 변했다. 유럽인들의 과도한 사냥으로 원주민들의 터전이 심하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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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경제]<레버넌트>-공급과잉 하락장의 대명사 ‘베어마켓’

휴 글래스를 공격한 회색곰은 사냥꾼들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만큼 공급이 적어 곰가죽은 아주 비쌌다. 1700년대 초반 보스턴은 곰가죽 시장이 번성했다. 곰가죽이 부족해지면 상인들은 소비자에게 곰가죽을 며칠 뒤에 넘겨주기로 하고, 비싼 가격에 돈을 먼저 받았다. 곰가죽이 비싸다는 소문이 나면 곰 사냥꾼들은 목숨을 걸고 곰사냥에 나섰다. 일시에 곰가죽 공급이 많아지자 가격은 떨어지고, 상인들은 그 차액을 누렸다. 이후 곰가죽은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투기꾼’이라는 의미를 갖게 됐다. 1719년 디포는 <증시의 해부>라는 책에서 ‘곰가죽 매수자’라는 용어를 썼다.

곰은 자연스럽게 하락장의 대명사가 됐다. 이것이 하락장이 ‘베어마켓’이라 불리는 유래다. 최근 각국의 주가가 떨어지자 투자의 대가로 불리는 짐 로저스는 “베어마켓에 대비할 때”라며 하락장에 맞춘 투자를 권고했다.

곰의 반대편에는 황소가 있다. 베어마켓 이후 100년쯤 뒤에 명명됐다. 1850년쯤 월스트리트의 한 신문이 곰에 맞설 동물이 없다는 데서 착안한 동물이 뿔을 높이 세운 황소(Bull)였다고 한다. 에드워드 챈슬러는 저서 <금융투기의 역사>에서 “bull은 강세를 뜻하는 독어 ‘bullen’에서 유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곰 사냥 전통은 ‘테디베어’가 탄생하는 계기도 됐다. 1902년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시시피와 루이지애나 사이의 주 경계선을 확정짓기 위한 회의에 참석했다가 수행원들과 함께 곰 사냥에 나간다. 그가 곰을 잡지 못하자 한 보좌관은 사냥개의 추격으로 기진맥진한 어린 흑곰을 버드나무 밑동에 묶었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정당하지 못하다며 이 흑곰을 쏘지 않았다. 이 이야기가 화제가 됐고, 만화가인 클리포드 베리먼은 당시 상황을 삽화로 그려 워싱턴포스트에 게재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가게를 하던 모리스 미첨은 이 이야기를 듣고 곰인형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애칭인 ‘테디’를 붙여 ‘테디스 베어’라고 이름을 붙였다.

미국은 지금도 곰 사냥을 많이 한다. 사냥전문지 <바우헌트>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한 해 3만5000여 마리의 흑곰이 사냥된다. 이렇게 많은 곰을 잡는 미국이지만 베어마켓은 아직 사냥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이후 엄청나게 많은 돈을 풀고도 흑곰 잡듯 시장을 잡지 못하는 걸 보면 금융은 역시 만만찮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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