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코끼리를 통째로 잡아먹은 보아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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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 물려 죽은 어린왕자. 어린왕자는 정말 자기 별로 돌아갔을까. 어른이 되어 읽은 어린왕자도 궁금하긴 매마찬가지였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마크 오스본 감독의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왔다. 오스본 감독은 <스펀지밥> <쿵푸팬더>를 만든 사람이다.

딸을 반드시 유명 대학에 입학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진 엄마가 있다. 엄마는 딸의 성공을 위한 인생계획표를 세워놓고, 딸은 이의없이 따라 살아간다. 그런데 새로 이사간 집 이웃에 별난 할아버지가 산다. 마당에 고장난 비행기가 있고, 밤이면 테라스에서 별을 본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했을 때 어린왕자를 만났다. 어린왕자가 자신의 소행성 B612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믿는 할아버지는 언젠가는 왕자가 있는 별로 비행을 할 꿈을 갖고 있다. 어느날 할아버지가 쓰러진다. 소녀는 할아버지를 위해 어린왕자를 찾기로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보는 거야”라고 말했던 어린왕자. 어른이 된 어린왕자는 그 순수한 마음을 그대로 갖고 있을까.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전 세계 250개의 언어로 번역돼 1억4500만부 이상이 팔려나간 세계적인 명작이다. <어린왕자>의 시작은 ‘나’가 그린 보아뱀 그림이다. 보아뱀이 코끼리를 잡아먹은 것을 그렸는데, 어른들은 “모자 아니냐”고 말한다. 보아뱀이라고 하자 “쓸데없는 짓 말고 공부나 하라”는 핀잔이 되돌아온다. 보아뱀이 자기 몸보다 몇 배나 큰 코끼리를 잡아 먹은 이 그림은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삽화 중 하나다. 이 그림에서 착안해 나온 경제용어가 있다. 보아뱀 전략이다. 인수·합병(M&A) 용어의 하나다. 보아뱀 전략이란 작은 기업이 큰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전략을 말한다.

[영화 속 경제]<어린왕자>-코끼리를 통째로 잡아먹은 보아뱀

대표적인 기업이 인도의 타타그룹이다. 2007년 세계 59위의 조강생산능력을 지진 타타그룹의 계열사인 타타스틸은 세계 9위의 영국 코러스스틸을 인수·합병하면서 일약 세계 5위의 철강회사로 컸다. 또 저가의 소형차를 생산하던 타타모터스는 영국의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인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2008년 인수했다. 앞서 2005년 중국 레노버는 IBM PC사업부를 인수하면서 일약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 증권가의 인수·합병도 ‘보아뱀 전략’이 주도하고 있다. 자산 6조원, 업계 14위의 NH농협증권은 자산 29조원, 업계 2위의 우리투자증권을 합병했다. 합병 뒤 NH투자증권은 업계 1위가 됐다. 자기자본 3조5000억원(업계 4위)인 미래에셋증권도 KDB대우증권(4조4000억원, 2위)을 사들였다. 양사의 통합으로 업계 1위 자리가 바뀌었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부채만 크고 이익을 내지 못한다면 ‘실탄’을 가진 작은 기업에 먹힐 수 있다.

문제는 리스크다. 아무래도 인수자금이 크다 보니 작은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커진다. 자칫 유동성에 압박을 받게 되면 하루아침에 회사가 위기에 몰릴 수 있다. 성공적으로 인수·합병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뒤가 더 문제다. 인수·합병된 기업의 조직이 크다 보니 조직통합이 쉽지 않다. 통상적으로는 한동안 두 개의 조직을 유지해 가다가 시간을 두고 하나의 조직으로 정비해 가는 기법을 많이 쓴다. <어린왕자>에도 보면 ‘보아구렁이는 먹이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킨 뒤 꼼짝하지 않고 소화시키기 위해 여섯 달 동안 잠만 잔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만큼 작은 기업의 큰 기업 인수는 시너지효과를 내기 위한 통합과정이 더 어렵다는 의미다.

할아버지는 “나는 어른이 되지 않겠어요”라고 말하는 소녀에게 말한다. “어른도 누구나 처음엔 아이였단다. 그걸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해.” 마크 오스본은 묻는다. 지금 당신은 도심 속 그 ‘어른’들인가, 아니면 아직도 꿈을 좇고 있는 늙은 비행사인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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