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어보세, 전통가옥!>-한국에서 집 짓기는 내 운을 시험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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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시타는 전통가옥 건축에 지식이 풍부하고 열정이 넘치는 쿠라다를 만났다. 만화의 스토리는 야마시타와 쿠라다가 땅을 구하고, 설계하고, 건축하는 주요 과정을 끊임없이 의논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천재 유 교수의 생활>, <불가사의한 소년> 등 인기만화를 쉬지 않고 그려온 야마시타 카즈미는 2008년 송년회에서 일본 전통건축에 관심이 많은 20대 젊은 건축가 쿠라다 테츠야를 만나 교류를 시작한다. 쿠라다는 회사에서 빌딩 건축을 담당하지만, 주말에는 스키야(數寄屋) 공방 일을 돕고 있다. 스키야의 스키(數寄)는 일본 전통 다도 등을 즐기는 행위이다. 폭넓게 옮기면 ‘풍류’ 정도가 되는데,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스키야는 일본 전통양식의 다도실이며, 때론 다도실이 있는 전통가옥을 뜻한다.(책에는 문장의 의미에 따라 ‘전통가옥’, ‘다도실’ 때론 ‘스키야’로 번역되었다.)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만화를 그리며 창밖 풍경만 바라보던 야마시타. 임대되지 않고 계속 비어 있는 옆집이 궁금해 인터넷으로 시세를 확인해 보니, 자신이 거주하는 집보다 9만엔 정도가 더 저렴한 것. 부동산 관리회사에 물어 보니 아무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야마시타는 갑자기 초등학교 6학년 때 떠나온 홋카이도 오타루의 좁은 집에서 바라본 풍경이 떠오른다. 그리고 결심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메일로 교류하던 쿠라다에게 개인적으로 다도실이 있는 전통가옥 건축을 맡기고 싶다는 문자를 보낸다. 그렇게 ‘도쿄도 내에 전통가옥’을 짓는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야마시타 카즈미 작가의 만화 <지어보세, 전통가옥!>의 한 장면. / 대원씨아이 제공

야마시타 카즈미 작가의 만화 <지어보세, 전통가옥!>의 한 장면. / 대원씨아이 제공

열정 넘치는 건축가와 책임지는 장인
일본만화로 일본 전통건축, 더 나아가 일본 전통문화를 이야기하는 <지어보세, 전통가옥!>이지만, 칸 너머에 펼쳐진 세상은 지금 우리 세상을 비추기도 한다. 재미없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이야기 도입부에 야마시타가 ‘건축’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 부동산 위탁관리 회사가 나온다. 집주인이 따로 있고, 위탁관리회사는 임대의 제반 과정을 맡아 처리하며 주택관리도 한다. 일본은 거품경제 당시 신도시를 개발하며 새로운 집을 계속 지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품과 인구가 동시에 줄어든 상황. 주택이 더 비싸게 팔리기는커녕 수요조차 사라지자 부동한 위탁관리 회사가 여분의 부동산들을 관리해 주고 있다. 사실 이 정도는 양호한 편이다. 대규모로 개발된 신도시는 매매는커녕 임대도 안 되는 상황이고,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도시에도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경고하는 우리의 미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용인만 해도 거의 밀어내기식으로 아파트 분양이 쏟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는 에세이 만화
야마시타는 고심 끝에 마음에 든 땅을 찾아 가격 흥정까지 끝내놓은 상태에서 집짓기를 포기하려 한다. 돈이 없기 때문. 아버지가 물려준 집을 판 돈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 만기가 되는 연금형보험에 들었고, 번 돈은 투자신탁(펀드)에 넣은 상태. 투자한 돈은 지금 회수하면 원금의 절반도 돌려받지 못한다. 결국 회사까지 그만두고 나와 이 프로젝트에 모든 걸 건 쿠라다의 노력으로 자금 컨설팅을 받은 뒤 저리 대출로 자금을 마련한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7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저축, 그 이후 주식 붐이 불었고, IMF 사태 후에는 투자 펀드 등의 상품이 유행했다. 연금형보험이나 투자신탁 등은 우리에게도 낯선 용어가 아니다. 하지만 노동 없는 머니게임은 내 예측과 다르게 비극으로 끝날 우려가 많다.

거품이 꺼진 이후의 부동산시장, 묶여 있는 여유자금. 야마시타의 출발선이다. 이 출발선은 한국이나 일본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 부동산 거품이 꺼지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거품이 더 커지리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묶여 있는 여유자금이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더 많지만, 대출로 집을 짓는 건 야마시타의 경우나 내가 선택할 경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다른 건 건축에 대한 정보 수집과 함께 집을 만들어가는 또 다른 주역인 건축가와 직접 실행하는 장인의 존재다. <지어보세, 전통가옥!>에서 야마시타는 전통가옥 건축에 지식이 풍부하고 열정이 넘치는 쿠라다를 만났다. 일본은 개인이 집을 지을 경우라도 건축가와 충분한 의견교환을 거쳐 설계와 건축이 진행된다. 만화의 스토리는 야마시타와 쿠라다가 땅을 구하고, 설계하고, 건축하는 주요 과정을 끊임없이 의논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몇 개의 안을 제시하고, 그 안에 대한 답을 듣는다. 결정을 하지 못하면 결정을 도울 수 있는 도움을 준다. 필요하면 현장에도 동행한다. 기둥이나 서까래에 사용되는 둥글고 큰 나무를 사기 위해 건축가, 장인, 그리고 건축주가 함께 교토에 간다. 열정이 넘치는 건축가만큼 자기 일에 책임을 지는 장인들의 모습도 감동적이다.

작가는 고심 끝에 전통가옥을 짓는 모험을 감행해 자신의 경험을 만화로 옮긴다. / 대원씨아이 제공

작가는 고심 끝에 전통가옥을 짓는 모험을 감행해 자신의 경험을 만화로 옮긴다. / 대원씨아이 제공

<지어보세, 전통가옥!>은 이 만화의 작가인 야마시타 카즈미의 이야기다. 만화는 2개의 축으로 진행되는데, 하나는 작가가 살았던 집에 대한 기억.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금 짓고 있는 전통주택의 건축 이야기다. 과거의 집에 대한 기억과 앞으로 기억이 입혀질 미래의 집을 만드는 과정이 서로 교차되어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은근한 웃음을 담아내는데, 능숙한 작가 특유의 연출들은 지겨울 틈을 주지 않는다. 혹 집을 짓는 과정 등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만화가 제목마냥 흥미를 주는 이유다.

일본에서는 작가의 개인을 드러내고, 자기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아내는 만화를 에세이 만화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웹툰 중에서 ‘생활툰’ 혹은 ‘일상툰’이라 불리는 만화의 일부와 교집합을 이룬다. 개인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그리는 만화는 주류 매체를 벗어난 지점에서 발생하기도 하는데, <지어보세, 전통가옥!>과 같은 주류 에세이 만화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이 만화는 특별히 독자 취향을 타지 않고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만화다. 하지만 한국에서 집을 지으려는 고민을 하는 독자가 혹 제목에 끌려 참고용으로 읽는 건 말리고 싶다. 안타깝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 단독주택을 짓는 건 내 운을 시험해 보는 운세뽑기 같은 거다. 설계, 시행, 시공, 감리의 과정마다 ‘대흉’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내가 정한 설계회사가 내 말을 충분히 듣고, 이해할 수 있는 회사인가, 시행사는 작은 과정 하나하나에 충실할 수 있을까, 시공에서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수준이 어떠한가(심지어 어제 과음을 하지 않았을까), 감리는 제대로 진행되는 걸까…. 쓰다 보니 씁쓸하다. <지어보세, 전통가옥!>은 일본에서는 3권으로 집도 준공하고, 책도 완간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2권까지만 나왔다. 전통주택에 살고 있는 ‘속편’은 잡지 에 비정기적으로 연재 중이다.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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