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 유발 프로 아이돌 체육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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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부상, 어깨부상, 목부상, 팔부상, 무릎부상…’

어느 프로야구 구단 부상자 명단의 일부가 아닙니다. 아니면 어느 집회 현장의 부상자 명단도 아닙니다. 바로 MBC에서 명절 때마다 방송하는 <아이돌 육상·농구·풋살·양궁 선수권대회>(이하 아육대)에서 나온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부상 명단입니다.

올해도 이 상황은 여지없었습니다. 걸그룹 마마무의 멤버 문별이 육상경기 도중 넘어져 발목을 다친 것을 시작으로, 틴탑의 멤버 엘조는 농구경기 중 손가락을 다쳤습니다. 또한 그룹 갓세븐의 잭슨과 주니어는 <아육대> 출연 이후 다친 팔에 깁스를 한 채 출국하는 모습이 팬들에게 목격되기도 했죠.

<아육대>는 2000년대 MBC가 고안해 낸 최고의 명절 콘텐츠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0년에 <아이돌스타 육상선수권 대회>가 그 시초로 당시 이틀 동안 아이돌 그룹 소속 가수들이 100m 달리기를 비롯해 110m 허들, 창던지기, 400m계주 등에 나서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당시 파일럿(시범) 형태로 방송됐던 <아육대>는 전국 시청률 15%, 수도권 시청률은 17%에 육박하는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이후부터 종목을 수영, 농구, 양궁, 풋살 등으로 늘리면서 지금에 왔습니다. 아이돌 가수들이 겨루는 모습은 당시 확실히 이채로웠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돌 가수들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나이였기 때문에 이들이 겨루는 모습은 음악으로 자웅을 겨루는 일 못지않게 시청자들에게는 박진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팬들에게는 음악방송보다 더 확실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기회로 여겨졌습니다. 팬들은 자신의 우상을 위해 더 많은 응원단을 구성했고, 이들이 응원전을 펼치는 모습도 확실히 볼거리가 됐습니다.

아이돌 육상·농구·풋살·양궁 선수권대회 / MBC

아이돌 육상·농구·풋살·양궁 선수권대회 / MBC

하지만 <아육대>의 성공 뒤에는 방송사와 가수 기획사 사이에 이어져 있는 부정적인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최근 방송사 음악 프로그램에는 20여 팀이 넘는 가수들이 출연합니다. 각각 3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무대에 서기 위해 기획사가 막후에서 벌이는 로비전은 굉장합니다. 무대를 보여주려는 아이돌 가수들은 많고 무대는 한정돼 있다보니 케이팝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음악의 통로가 되는 방송사의 입지는 높아지기만 합니다.

아이돌 가수들을 데리고 체육대회를 여는 방송사는 자연스럽게 참여도나 충성도가 높은 기획사 또는 가수들에게 더 혜택을 주려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음악방송 무대를 구상하는데도 시간이 빠듯한 아이돌 가수들이 체육대회로 내몰리게 되는 거죠. 대형 기획사의 경우에는 나름의 힘을 갖고 방송사의 요구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으나 신인이나 인기가 적은 팀의 경우에는 <아육대> 출연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부상도 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각종 일정을 소화하고 파김치가 된 아이돌 가수들은 또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열리는 네 종목의 대회에서 체력을 빼앗깁니다. 게다가 팬들이 포진하고 있고, 상대 아이돌 그룹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의지 역시 부상을 유발하는 원인이 됩니다.

올해의 경우에는 주최측이 ‘스포일러’ 유출 방지를 목적으로 스타를 찍는 팬클럽의 가수에게 강제퇴장이라는 징계를 내렸다는 말도 들립니다. 그야말로 방송사 ‘갑질’의 꽃이 아이돌 체육대회에서 피어나는 셈입니다. 권리가 계속되면 권력이 되고, 권력이 폭주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하죠. 이런 내막을 알고나니 <아육대>를 편하게 즐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집니다.

<하경헌 경향신문 엔터·비즈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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