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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7월 31일 <경향신문>은 20년 후인 2015년 가상의 미래를 그렸다. ‘미래의 주부 2015년의 가정생활’을 그린 기사 제목은 ‘어머니는 왜 그리 고생만 하셨을까’였다. 20년 후에는 가사노동은 대폭 줄고, 요리·청소는 취미활동이 되고, 남녀관계는 질적으로 평등해지면서 여가는 자신의 뜻대로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게 기사의 골자다. ‘헬조선’ 사이트 이용자는 20년 전에 보도된 이 신문기사를 스크랩한 후 ‘어머니… 2015년은 헬조선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헬조선. 지옥을 뜻하는 영어 ‘Hell’과 ‘조선’의 합성어다. 한국 사회가 지옥처럼 살아가기 힘들다는 청년세대의 절규와 풍자, 자조의 목소리가 담긴 사이트다.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부모의 재력에 따라 자식의 계급도 정해져 있다. 더 이상 개인의 노력으로는 한국 사회의 계층 이동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이리틀텔레비전의 김영만  / MBC제공

마이리틀텔레비전의 김영만 / MBC제공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데 중요한 요소는 합리성과 성실이다. 합리적인 법률과 행정제도 하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개인은 누구나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합리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뢰에 금이 가고 개인의 성실이 아무런 보답을 받지 못할 때, 사회 구성원들이 부를 향해 보내는 시선은 따가울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은 ‘외제차’ 논란으로 난데없는 구설에 올랐다. 그가 탄 외제차가 2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누리꾼들의 비난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민을 가는 친구에게서 3000만원 주고 구입한 차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외제차 꼬투리잡기는 한국 사회의 비뚤어진 오지랖과 비상식이 만든 촌극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타인의 부에 대해 자동반사적으로 박탈감과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회라면, 이를 그저 개인의 비뚤어진 심성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1995년의 틀린 예측은 ‘2015년 가정생활’만은 아니다. 20년 전, 텔레비전 앞에 앉아 종이접기를 따라하던 유치원생들은 ‘참 쉽죠’라는 종이접기 아저씨의 말만 따라하면 제법 그럴 듯한 장난감을 만들었다. 그렇게 어른들이 만든 세상을 믿고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꿈과 가까워질 줄 알았지, 20년이 지나 다시 만난 아저씨에게 ‘직장을 만들어 달라’는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른 입장에서 죄송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종이접기 아저씨도 20년이 지나 이런 슬픈 사과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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