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명탐정 : 사라진 놉의 딸>-화폐 액면가와 제조비용 차익 ‘시뇨리지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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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19년(1795년) 조선은 은광의 채굴이 금지되어 모든 은은 왜로부터 들여오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함량이 떨어지는 불량은이 다량으로 유통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조선의 경제는 뿌리째 흔들려 백성들의 삶은 황폐해졌다.’

김석윤 감독의 <조선명탐정 : 사라진 놉의 딸>은 이렇게 시작된다. 전편에서 공납비리를 파헤쳤던 명탐정 김민(김명민 분)은 조선 전역에 불량은괴를 유통시키는 일당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수사에 나선다. 자신을 따르는 서필(오달수)과 함께 수사에 나선 김민은 정체가 알쏭달쏭한 일본 여인 히사코(이연희 분)를 만나게 된다.

은함량이 떨어지는 은괴를 만들어 유통시키는 이유는 ‘시뇨리지 효과’로 설명된다. 시뇨리지 효과란 화폐 액면가와 제조비용 간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차익을 말한다. 유래는 중세시대 봉건영주를 의미하는 시뇨르(seigneur)에서 나왔다. 이들은 자기 성내에서 독점적으로 화폐를 주조해 유통시킬 수 있었는데, 때로 금화에 구리와 같은 불순물을 섞어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영화 속 경제]<조선명탐정 : 사라진 놉의 딸>-화폐 액면가와 제조비용 차익 ‘시뇨리지 효과’

시뇨리지 효과는 독점적 발권력을 갖고 있을 때 발생한다. 한국 경제 틀내에서라면 한국은행이 시뇨리지 효과를 누린다. 5만원짜리 지폐를 찍어내면서 1000원어치의 종이와 잉크를 썼다고 하면 시뇨리지 효과는 4만9000원이다.

시뇨리지 효과는 국제정치경제에서 자주 거론된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막대한 빚을 갚는 데 시뇨리지 효과를 이용한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국가다. 세계 모든 나라들은 달러를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재료 값이 1달러인 2달러짜리 지폐를 찍어내면 그 자체로 1달러를 번 효과가 나타난다. 상품교역에서 1달러어치 적자가 생겨도 돈을 찍어내면서 생긴 1달러의 여유로 갚으면 그만이다. 유럽이 유로화를 앞세워, 중국이 위안화를 앞세워 미국의 기축통화국 지위에 도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왜인들과 결탁한 조선인들이 가짜 은괴를 만든다. 불량화폐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것은 수익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다른 제품과 달리 화폐 주조차익을 이용한 시뇨리지 효과는 수익의 제한을 사실상 받지 않는다. 재료비가 거의 들지 않는 지폐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시뇨리지 효과만을 믿고 과도하게 돈을 뿌렸을 경우에는 경제 전체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대표적인 부작용이 인플레이션과 자산버블이다. 시중에 돈이 너무 풀리면 화폐가치가 떨어져 물가는 치솟고, 넘쳐나는 돈들이 마구잡이로 투자되면서 자산은 그 가치 이상으로 가격이 형성된다.

불량화폐가 유통되는 것을 방치하면 ‘그레셤의 법칙’이 적용될 수도 있다. ‘그레셤의 법칙’이란 16세기 영국의 재무관인 그레셤이 “소재의 가치가 다른 화폐(금화와 은화)가 동일한 액면가액의 화폐로 유통될 경우, 소재의 가치가 높은 금화는 사라지고 가치가 낮은 은화만 유통될 것”이라고 밝힌 데서 유래했다. 즉 다들 불량화폐를 쓰려 하고 진짜 화폐는 숨겨두면 시장에서는 불량화폐만 거래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다. 조선이 아무리 정품화폐를 만들어도 유통되는 것은 불량화폐밖에 없으니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이러면 백성들의 불만이 치솟고 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명탐정 김민이 사약을 받을 각오를 하고 유배지를 탈출해 수사에 뛰어든 것은 불량화폐 유통이 미치는 위험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각국은 위조화폐에 중벌로 대응한다. 정부 신용으로 발행되는 화폐에 대한 믿음이 무너질 때 불어닥칠 위험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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