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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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라크 공격 직후 바그다드를 취재차 방문한 적이 있다. 현지 주민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없다”며 반복해 나오는 단어들이 있다. 물, 전기, 그리고 오일(기름). 독재정부와 동시에 무너진 사회기반 시스템에서 당장 아쉬운 ‘지원’에 대한 호소다. 주유소마다 끊임없이 늘어서 있는 사람들의 행렬들. 인터뷰한 한 주민은 20ℓ 말통 하나 기름을 사는 데 3박4일이 걸렸다고 했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치는 액션신에, 그것도 최근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편화된 CG도 아닌 스턴트를 동원해 찍은 것을 두고 “미친 영화”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1979년 처음 만들어진 이 영화 시리즈의 배경은 근 미래, ‘종말 이후의 세계’, 다시 말해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의 세계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있다. 인류문명이 급작스럽게 붕괴된 것이므로 그동안 누려 왔던 자원이 완전히 고갈된 것은 아니다. 자원은 곧 권력이다. <매드맥스…>의 세계에서도 독재자 임모탄은 물과 기름을 독점, 자신의 권력을 누린다.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영화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영화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포스트 아포칼립스, 다시 말해 ‘멸망 이후’를 다룬 작품들은 많다. 영화화까지 된 코맥 맥커시의 소설 <로드>(2006)의 주인공 부자는 바다를 찾아 나선다. 작품 속에서 지구 멸망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은 타서 재만 남아 있는 황량한 풍경 묘사가 일품이다. 설령 ‘바다가 있던 자리’에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바다가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전기나 기름은커녕, 물도 구하기 어렵다. 작품들에 묘사된 멸망의 원인은 다양하다. 세계대전, 핵발전소 사고, 환경파괴, 기계의 반란….

2011년에 출간된 <1초 후>라는 소설은 EMP, 그러니까 전자기기를 무력화하는 공격이 지구문명 자체를 붕괴하는 상황을 초래한다. 지구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지구생태계는 지금까지 최소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어 왔다고 한다. 그리고 여섯 번째의 대멸종. 학자들은 과거의 대멸종이 자연재해-화산 폭발이나 혜성 충돌에 의한 것이었다면, 앞으로 오게 될 여섯 번째는 인류가 스스로 일으킬 재앙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룬 작품들이 화제를 모으는지에 대한 하나의 힌트일지도 모르겠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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