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첨단 제품보다 구식에 더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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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뭘까. 최신 스포츠카에 최고급 옷, 명품백? 때론 추억에 젖은 손때 묻은 물건들이 마음을 더 풍성하게 만들 때가 있다.

케이트 베커-플로이랜드 감독의 <송원>은 아날로그 영화다. 누구나 하나쯤은 간직한 상처를 힐링하는 여정에는 음악이 있다. 인류학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프래니(앤 해서웨이 분)는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급히 귀국한다. 동생은 혼수상태에 빠진 상태. 누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음악을 하기 위해 대학을 포기하겠다는 동생을 강하게 만류했던 누나 프래니는 죄책감에 빠진다. 우연히 펼쳐본 동생의 수첩에는 동생이 자주 찾았던 식당, 클럽 등이 기록돼 있다. 프래니는 이곳을 따라다니며 동생이 좋아했을 음식과 음악을 채집한다. 동생이 열렬히 좋아했던 뮤지션 제임스를 만나 동생의 데모 CD를 전해준다. 그러다 제임스와 프래니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영화 속 경제]송원-첨단 제품보다 구식에 더 끌린다

프래니가 동생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축음기다. 동생은 어릴 때 축음기에 빠지며 음악을 사랑하게 됐다. 이어 찾는 것이 빈티지 건반이다. 프래니의 어머니는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엄마가 연주하면 프래니는 노래를 부르곤 했다. 가수인 제임스가 아끼는 물품은 휴대용 CD플레이어다. 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브랜드 뉴’ 제품들이 아니다. 최신형 전자키보드, 전자기타, 고가의 음향장비는 나오지도 않는다. 낡고 손때 묻은 악기면 충분하다. 과하지 않은 기술, 경제학에서 말하는 ‘적정기술’이다. 적정기술이란 해당 지역의 환경이나 경제, 사회여건에 맞는 기술을 말한다. 많은 돈이 들지 않고, 누구나 쉽게 배워서 쓸 수 있는 기술이다. 아프리카 남서부 나미비아 사막 마을에는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한 전기펌프가 없다. 대신 허공을 향해 대형 그물이 쳐져 있다. 이 지역은 새벽에 안개가 자주 끼는데, 안개가 그물에 접촉하면 그물이 젖고, 거기서 맺힌 물방울이 파이프를 타고 내려와 항아리에 모이면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한다. 첨단기술은 전기펌프지만 아프리카 한가운데 전기가 있을 리 없고, 설사 있다고 해도 주민들은 돈이 없다.

적정기술은 1960년대 중반 경제학자 슈마허가 제안한 ‘중간기술’에서 시작됐다. 슈마허는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를 통해 중간기술 운동을 펼친다. ‘적정기술’이라는 단어로 바꾼 것은 중간이라는 용어가 자칫 첨단기술보다 열등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슈마허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간디는 서구의 방직기계 대신 인도의 전통 물레를 통해 면화를 가공했다. 서구의 거대 기술은 인도에 적합하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슈마허는 적정기술이 개도국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직 준비도 되지 않은 개도국이 선진국의 첨단기술을 먼저 도입할 경우 오히려 선진국에 종속될 수 있다. 적정기술을 써 자립한 뒤 차례로 첨단기술을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이다. 한국이 캄보디아에 유상원조로 지어준 하수처리장은 화학약품을 쓰지 않는다. 대신 미생물이 오폐수를 자연분해한다.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하수처리장을 만들어줘봤자 약품값이 없는 데다 공정이 복잡해 인력도 많이 필요하다. 캄보디아로서는 최첨단 하수처리장은 되레 짐이 될 수 있다.

제임스의 집에서 휴대용 CD플레이어를 본 프래니가 “어, CD플레이어네”라고 반가워하자 제임스가 말한다. “나 좀 구식이야.” 두 사람은 제임스의 기타에 맞춰 뉴욕의 야경을 보며 ‘Afraid Of Heights’를 부른다. 프래니의 엄마는 <아메리카>의 ‘I Need You’가 수록된 LP판을 꺼낸다. 와인 한 잔에 흐르는 LP판의 둔탁한 음이 참 매력적이다.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는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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