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 동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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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여적]잔혹 동시 논란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이렇게/엄마를 씹어 먹어/삶아 먹고 구워 먹어/눈깔을 파먹어/이빨을 다 뽑아 버려/머리채를 쥐어뜯어/살코기로 만들어 떠먹어/눈물을 흘리면 핥아 먹어/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가장 고통스럽게.’ 시의 제목은 ‘학원 가기 싫은 날’이다. 시인은 초등학교 4학년이다. 이 시는 한동안 ‘잔혹 동시’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렸다. 어른들은 차마 못 볼 걸 봤다는 반응이다. 이토록 잔인한 표현이 가족인 엄마를 향해 있다니. 비난이 빗발쳤다. 출판사는 이 시가 수록된 시집 <솔로강아지>를 전량 회수 폐기처분했다. 해맑은 어린이날과 따뜻한 어버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 5월에 찬물을 끼얹은 한바탕 소동이었다.

그런데 이 시집에는 이런 시도 있다. 시의 제목은 ‘착한 오빠’. ‘오빠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내 친구가 오빠의 머리카락을 한참 잡아당겼기 때문에 태권도 사범단이면서도 때리는 대신 말없이 참는 오빠. 어떤 아이가 날 놀렸을 때 오빠는 그러지 말라고 말려 주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친구 앞이었기 때문에. 남매란 무엇일까. 가족이란 무엇일까. 피가 섞인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플 때 같이 아프다는 것일까’ 시인은 이 시에서 ‘아플 때 같이 아픈’ 게 가족이라고 말한다. 두 시를 통해 본 가족에 대한 시인의 시선은 ‘애증’이라는 보편적인 감성에 다름 아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가장 미운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안쓰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영화 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가족이란 남들이 보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한 것도, 진은영 시인이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라는 시를 쓴 것도 어쩌면 이 시인의 시와 조금씩 맞닿아 있는 정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학원 가기 싫은 날’에 유별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왜일까. 잔인함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아이들이 느끼는 그 극단적 미움에 어른들이 내심 뭔가 켕기는 게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한국은 OECD 기준 10대 자살률 1위인 국가다. 잔혹 동시 ‘학원 가기 싫은 날’ 논란은 세상의 눈치를 보느라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몰 수밖에 없는 약해 빠진 어른들의 자격지심을 건드렸기 때문에 일어난 소동은 아니었을까.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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