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동물 1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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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문인 이규보의 <슬견설>은 사람 피를 빠는 이의 목숨이나 집을 지키는 개의 목숨이나 다를 것 없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7세기가 지난 1975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철학자 피터 싱어는 <동물해방>이라는 책에서 동물의 목숨이 사람의 목숨과 다르지 않다는 철학적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동물은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아니라 사람처럼 ‘관심’에 따라 행동한다는 논지를 펴는 싱어의 주장은 여전히 급진적으로 읽힌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지난 40년 동안 동물의 삶과 고통에 관한 사유의 깊이를 더한 공로는 부인하기 힘들다. 동물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에 그다지 너그럽지 않은 사람도 최소한 집 잃은 동물들이 살던 곳을 찾게 해주는 사업이 예산낭비라고까지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갈 곳 없는 동물을 위한 보호시설을 설치하는 일이 동물보호법에 명문화된 것은 2008년의 일이다.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 

2008년 7만7877두로 집계된 유기동물의 수는 2010년 10만899두까지 늘었다. 이후 증감을 반복, 2013년 9만7197두를 기록하며 10만두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개가 전체 유기동물 가운데 63.9%, 고양이가 35.1%를 차지해 두 동물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그밖에 토끼나 기니피그, 때때로 뱀이나 카멜레온 같은 동물들도 유기동물보호소 홈페이지에 사진이 올라온다.

[주간여적]유기동물 10만

유기동물 보호시설 자체가 드물던 2005년에 비하면 유기동물의 안락사 비율은 50.2%에서 2013년 24.6%로 크게 줄었다. 보호시설이 늘어나 더 많은 동물들이 원치 않는 죽음을 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버려지는 동물의 수가 줄어들지 않는 세태는 정부의 정책만으로는 어찌하기 힘든 부분이다. 반려동물에게도 사람처럼 15자리의 등록번호를 부여하도록 의무화했음에도 유기동물 수는 큰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혹시라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함께 살던 동물을 버릴 마음을 먹고 있다면 동물보호법 2조에 명시된 동물의 정의를 기억하면 어떨까. “‘동물’이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이다.” 가족에게서 버려지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똑같이 고통을 느낀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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