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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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경기에서 선수들이 돌아오는 지점이 ‘반환점’이라고 국어사전에 설명돼 있다. 반환점의 정의로야 틀리지 않겠지만, 실제로 반환점이 있는 마라톤 대회는 아주 드물다. 세계 6대 마라톤 대회(WMM)를 보면 모두 앞으로만 달리는 코스다. 선수들이 달려온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다.

뉴욕과 보스턴은 직선에 가깝다. 베를린과 시카고는 커다란 타원형이다. 도쿄는 엑스자이고 런던은 구불구불 사행천 모양이다. 반환점이 있으면 선수들이 쉽게 피로를 느낀다. 같은 길을 되돌아가는 것은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세계기록이 절실한 주최 측이 반환점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런 것을 보면 국어사전의 설명을 고쳐야 하지 않나 싶다. 반환점은 오히려 시간 개념에 많이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정권의 반환점’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이 5년 단임제여서 그렇다. 미국처럼 4년 연임이거나 일본처럼 임기가 없으면 못 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모든 정권의 반환점이 기회이자 위기였다. 가령 YS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파헤쳤지만, 차남 현철씨의 국정개입이 불거졌다.

/서성일 기자

/서성일 기자

‘정권의 반환점’에서 전면에 나서는 것이 검찰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를 수사하다가 박근혜 정부의 핵심을 겨누게 됐다. 검찰은 항상 줄타기를 했다. 수사의 국면 국면마다 정권이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살피면서 처신을 고민한다. 숨통이 거의 끊어져야만 칼을 휘두른다는 비난도 그래서 나온다. 큰 마라톤 대회의 경우 반환점은 없지만 중간지점은 있다. 21.0975㎞쯤에 가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같은 페이스로 뛰면서 완주에 주력할 것인지, 이를 악물고 달려 기록에 도전할지 정해야 한다. 문제는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그간 연습량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사람과 정권의 목숨을 다루는 검찰에는 연습이 없다. 모든 실전이 다음 실전의 연습일 뿐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못하면 다음에도 못한다. 검찰이 이번에도 의지를 발휘하지 못하고, 갸우뚱한 결론을 내놓을까봐 걱정이다. 허구한 날 그렇게 살아서는 3류 러너, 3류 검사로 끝날 뿐이다. 힘을 내주길 바란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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