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여자-죽은 연인의 과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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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환상의 여자-죽은 연인의 과거를 찾아서

환상의 여자
가노 료이치 지음·한희선 옮김·황금가지·1만5800원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들었다. 혹자는 말한다. 극복하라고. 하지만 과거는 극복한다고 말끔히 지워지거나 도망친다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과거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사이가 좋아지거나 의식하지 않을 정도가 되더라도, 과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아무리 어른이 되고 시간이 흘러도. ‘인생은 애처로울 정도로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아이는 다른 청년은 되지 않는다. 청년은 다른 어른이 되지 않는다.’

변호사인 스모토 세이지는 길에서 우연히 5년 전 헤어진 여인을 만난다. 사랑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료코. 연락처를 나누고 헤어진 다음 날 료코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화 메시지에는 상담할 것이 있다는 료코의 목소리가 남아 있다. 범인은 금방 밝혀지지만 스모토는 순순히 동의하지 않는다. 료코의 장례식을 치르고, 그녀가 왜 죽었는지를 캐기 시작한다. 죽은 그녀의 의뢰를 받아서, 그녀가 누구인지를 찾아간다.

<환상의 여자>는 스모토가 알고 있었던, 그러나 사실은 하나도 몰랐던 그녀의 과거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로맨틱한 설정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료코의 고향을 찾아가서 남은 의문은 그녀가 료코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녀가 죽은 것은 치정 때문이 아니고 20년 전 지역 개발에 얽힌 케케묵은 부패와 흑막 때문이라는 심증을 얻는다. 전직 경찰이 운영하는 흥신소와 료코를 따르던 술집 여인 사요코의 도움을 받아 스모토는 과거의 진실을 찾아간다. 무수하게 얻어맞고 욕을 먹으면서도 스모토는 모든 퍼즐을 끼워 맞춘다. <환상의 여자>는 작은 사건에서 출발하여 사회의 거대한 악과 만나게 되는 사회파 추리의 정석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하지만 <환상의 여자>의 중심은 스모토의 마음에 있다. 스모토의 아버지는 부정 혐의로 공무원을 그만둔 후 자살했다. 수사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자신이 풀어준 남자가 다시 강간살인을 저질렀다. 이제 스모토는 정의가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런 스모토가 사랑했던 여인 료코가 죽었고,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료코의 정체를 찾고 찾아 겨우 도달한 종착점에서 만난 암흑가의 인물은 말한다. “이 세상에는 미담 따위 하나도 없어…. 그런데도 진실을 알고 싶어?”

스모토는 진실을 알고 싶다. 료코가 왜 자신에게서 사라졌는지 알고 싶고, 그녀의 모든 과거를 알고 싶다. 그것은 자신의 과거를 받아들이기 위한 여정이다. 왜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왜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쳤는지를 스스로 이해하는 것. 과거를 받아들이는 방법은 도망치는 것도, 이기는 것도 아니고 사실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다고 해서 그가 완벽한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것뿐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뭔가 대단한 것을 사는 게 아니라 나날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아침을 살고 밤을 사는 것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마 스모토는 이제 정의가 무엇인지 회의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정의가 아니라 자신이 믿는 정의를 찾아갈 테니까.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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