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제주 노동자들 미소 속의 뒤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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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중국 시장이 열리면서 지금은 호텔업계 최대 호황기다. 호텔마다 빈 객실이 없다. 신축 공사로 객실이 해마다 1만개씩 늘어날 정도다. 떠나간 관광객이 돌아와도 도급으로 떠난 직원을 돌아오게 하지 않는 호텔, 관광 한국이다.

제주공항에 착륙한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자그마한 창밖으로 공항의 풍경을 본다. 비행기 한 대가 이륙하고, 수신호에 따라 대기하던 비행기가 공항 건물 가까이 주차한다. 카고 차량 주위로 형광 띠를 두른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이 보인다. 활주로 가운데 멈춰선 비행기에서 사람들이 내린다. 기다리던 버스가 태워 공항 건물로 향한다. 공항 활주로가 혼잡스럽다.

중국 관광객 급증으로 제주공항 하루 평균 이용객이 7만명 안팎이다. 시설규모가 5배가 넘는 인천공항 이용객의 75%에 이른다. 국내 공항 중에서 제일 붐빈다. 한참 만에 비행기 문이 열린다. 승객들을 무사히 수송한 조종사와 승무원의 임무는 끝났지만 보이지 않는 노동은 계속된다. 비행기에서 화물을 운송해 컨베이어에 옮겨 싣는다. 수신호로 비행기를 이동시킨다. 비행기를 정비하고 기름을 넣는다. 비행기 내부를 청소한다. 보이지 않는 이들의 노고가 없다면 비행기는 하늘을 날 수 없다.

제주 여미지식물원 | 박점규

제주 여미지식물원 | 박점규

공공운수노조 제주지역본부 오한정 조직국장은 제주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 비행기 기내 물품 정리와 청소를 하는 노동자들을 만났다. 10년 넘게 일한 노동자의 기본급이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2014년 4월 20명 중 13명이 모여 제주공항 아시아나객실분회를 결성하고 하청업체인 비에스제주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호봉제를 도입해 월급이 평균 20만원가량 올랐다.

조종사, 스튜어디스, 사무직은 아시아나항공 직원이다. 이들은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와 아시아나항공노조 조합원이다. 비행기 수신호, 급유, 정비, 화물운송 노동자는 아시아나에어포트라는 계열사 직원이다. 기내 청소 노동자는 하청업체인 비에스제주 소속이다. 모두 아시아나항공사를 위해 일하지만 처지는 천지 차이다.

전국 14개 공항 노동자 65%가 비정규직
공항 청사를 둘러본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제주공항을 포함해 전국 14개 공항을 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의 직원은 1753명,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3225명이다. 공항을 운영하는 노동자의 65%가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이 85%를 넘는 인천공항보다는 적지만, 제조업에서 간접고용 비율이 가장 심각한 조선소 수준이다. 공항 사장은 용산 철거민을 살인 진압해 6명을 숨지게 한 이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 그는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더욱 더 매진”하겠단다. 그에게 ‘더불어 행복한 사회’의 구성원에는 철거민이 없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있을까?

제주국제공항 면세점에서 일하는 정경숙씨(42)는 제주 토박이다. 한동리 바닷가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2004년 부루벨코리아에 입사했다. 루이비통, 크리스챤디올, 펜디 등 25개 명품 브랜드를 수입해 면세점에서 판매하는 회사다. 1960년에 한국지사가 만들어졌다. 제주에는 5개 면세점 200여명이 일한다.

한류 바람을 타고 중국 관광객이 몰려들자 매출이 급증했다. 쇼핑을 위해 제주를 찾는 단체 관광객들을 상대로 매일매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조기 출근과 연장 영업이 계속됐다. 그러나 면세점 판매원들의 처지는 말이 아니었다. 부루벨코리아 어느 브랜드는 2010년 기본급이 63만원으로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다. 2009년 엔고 현상으로 매출이 두 배로 뛰었지만 회사는 임금을 동결했다. 서울에 있는 직원들이 모였고, 전국의 점장들과 연락을 취했다. 거사일은 10월 4일, 천사일이었다. 지역에 노동조합 설립을 알렸다. 제주에서만 100여명이 노조 가입원서를 썼다. 전국 매장 1000여명의 직원 중에서 700여명이 함께했다. 민주노총 민간서비스연맹에 가입했고, 가장 먼저 고용노동부에 최저임금 위반 진정서를 냈다. 약 6억원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회사는 성실하게 교섭에 나오지 않았다. 회사가 노무 자문을 의뢰했던 곳은 노조 파괴로 악명 높았던 창조컨설팅이었다. 2011년 5월 11일 제주시청을 시작으로 명품 판매노동자들이 분노의 행진을 시작했다. 7월 20일, 마침내 노사 간에 협상이 타결됐고, 임금이 대폭 올랐다.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면세점의 지각변동을 가져왔어요. 직원을 데리고 가려면 월급을 더 줘야 하니까 면세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좋아진 거죠.”

노조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경숙씨와 신라면세점을 돌아본다. 아침시간에도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 “노조 만들어지고 되게 많이 좋아졌어요. 신입사원 들어오면 꼭 노조에 가입하라고 하죠. 노조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조합원이 되고 싶어요.” 명품 가방 로에베(LOEWE) 이정은 매니저의 ‘아부’에 경숙씨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다. 그녀는 일어를 전공했지만 지금은 중국어를 모르면 일을 못한다. “요즘 감정노동이 언론에 많이 나오잖아요. 우리는 노조 가입하면서 교육을 받았어요. 이런 게 노조의 힘이죠.” 정은씨의 할아버지는 제주 4·3 항쟁에서 돌아가셨다. 그는 부모님을 모시고 4월 3일 4·3 공원묘지에 갈 예정이다.

정경숙 사무국장이 3층 화장품 코너 크리스챤디올에 들러 황영인 조합원에게 상품권을 건넨다. 노조가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 행사로 연 ‘신생아 모자 뜨기’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처음 해보는 뜨개질이라 5일이나 걸렸단다. “노조가 없는 곳과 차이가 많이 나죠. 직원들의 목소리를 더 들어줄 수밖에 없잖아요.”

명품 가방 가격이 200만~300만원, 지갑도 100만원이 넘는다. 샤넬 시계 가격은 7100만원이 붙어 있다. 몽블랑 볼펜이 176만원이다. 지도교수에게 바치는 뇌물성 선물로 이용된단다. 한 달 일해서 번 돈보다 비싼 볼펜을 파는 노동자들이 오늘도 떼로 몰려드는 중국 관광객들을 상대로 환한 웃음을 지으며 감정노동을 한다.

제주 신라면세점 | 박점규

제주 신라면세점 | 박점규

청년 상대로 희망고문하는 특급호텔들
제주 시내 특1급 호텔인 더호텔 커피숍. 예약마케팅을 담당하는 이창주씨(44)는 호텔리어 부부다. 아내는 중문의 롯데호텔에서 일한다. 시내에는 칼, 그랜드, 오리엔탈, 라마다프라자호텔이 특1급이다. 중문관광단지에는 신라, 롯데, 하얏트가 있다. 칼호텔과 더호텔은 민주노총, 그랜드와 하얏트는 한국노총 소속 노동조합이 있다.

호텔 입구에 긴장한 모습의 앳된 호텔리어가 보인다. 인턴 사원이다. 15년 전 창주씨도 대학을 졸업하고 이 호텔에서 손님 가방을 들어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당시에는 영어와 일본어가 기본이었다. 지금은 외국인 투숙객 중 80%가 중국인이다. 중국어 공부에 머리를 싸맨다. 인턴 1년, 계약직 1년이 지나면 정규직이 된단다. “한 호텔에서는 인턴 기간 2년이 되기 전에 시험을 치러 잘라내고, 다시 인턴을 뽑는 일을 반복해요. 대기업이 청년들을 상대로 희망고문을 하는 거죠.”

호텔에는 예약과 영업을 담당하는 객실부, 식음료, 조리팀, 시설부, 룸메이드 업무가 있다. 2005년이었다. 관광객들이 줄어들자 호텔 업무를 도급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노조가 없는 호텔부터 무너졌다. 룸메이드, 시설, 청소업무를 하청업체로 넘겼다. 일부 호텔에서는 식음료 업장도 도급을 줬다. 관광객이 줄었다는 이유로 어제 정규직이 하던 일을 오늘 비정규직이 하게 했다. 2005년 더호텔(당시 크라운프라자호텔) 노동자들은 53일 동안 파업을 벌였지만 도급화를 막아내지 못했다. 노조는 깨지기 직전까지 갔다가 회복됐다. 현재 호텔에서 일하는 130명의 노동자 중에서 객실부, 식음료, 조리팀에서 일하는 80여명은 직영, 나머지는 하청이다. 지금은 시설부문을 재직영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2009년부터 중국 시장이 열리면서 지금은 호텔업계 최대 호황기다. 호텔마다 빈 객실이 없다. 신축공사로 객실이 해마다 1만개씩 늘어날 정도다. 떠나간 관광객이 돌아와도 도급으로 떠난 직원을 돌아오게 하지 않는 호텔, 관광 한국이다.

“저희 호텔 신입사원 연봉이 3000만원 정도예요. 노동조합에서 ‘하후상박’ 원칙으로 교섭을 하니까 경력이 짧은 직원들은 신라나 롯데보다 처우가 낫죠.” 조만간 지분 매각으로 경영진이 바뀐다. 고용보장은 합의되어 있다. 새 경영진이 도급으로 넘긴 일자리를 직영으로 되돌려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낼까? 인사총무팀으로 노사 교섭에서 회사 측 교섭위원으로도 일했던 이창주 노조분회장은 직원들을 위하는 길이 곧 회사를 위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직원 120명에서 35명으로 준 식물원
공항 리무진 버스가 평화도로를 달려 중문관광단지 여미지식물원으로 향한다. 아침에 만난 김동도 전 민주노총 제주본부장(53)의 미소가 떠오른다. 그는 1989년 12월 1일 학교를 졸업하고 스물일곱에 첫 직장으로 여미지식물원에 입사했다. 1995년 삼풍산업 자회사 계우개발이 한국관광공사에서 3만4000평 부지를 사들여 1989년 10월 12일 개장한 식물원이었다. 1994년에는 관람객 140만명을 돌파해 제주 최대의 관광지로 성장했다. 1995년 6월 삼풍백화점이 무너지자, 삼풍그룹은 보상 차원에서 자회사인 여미지식물원을 서울시에 기부했다. 그와 동료들은 노조를 만들고 서울시를 상대로 100일 동안 전면파업과 상경투쟁을 벌여 비정규직을 포함해 114명 전원 고용을 승계 받았다. 서울시설관리공단은 2005년 4월 부국개발에 여미지식물원을 팔았다. 김동도 전 본부장은 2008년 1월 정리해고, 2011년 1월과 2012년 8월 징계해고를 당했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은 그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2013년 6월 위암이 발병해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항암치료를 받았다.

암 투병도 극적이었다. 감기 한 번 앓지 않을 만큼 건강한 몸이었다. 단지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한라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는데 커다란 암 덩어리가 발견됐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11개월 동안 항암치료만 받았다. 동지들이 치료비를 모아줬다. 지인의 도움으로 병원을 옮겼다. 의사는 암을 완전히 제거할 확률이 10%라고 했지만 ‘생명 연장’만 할 수는 없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지금까지 경과는 좋다. “제가 민간보험은 하나도 없는데 사람보험을 많이 들었는지 좋은 분들 덕분에 이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는 몸이 완쾌되면 활동을 재개할 계획이다. 대한민국 노조 조직률도 10%. 암세포를 제거하는 것처럼 노동조합을 지키는 일이 어려운 나라다. 10%의 가능성을 믿고 수술대 위에 오른 그처럼 살맛 나는 일터를 위한 노동자들의 도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여미지식물원 노조 사무실, 5명의 여성 조합원들의 모였다. 30분 휴식시간이다. 맏언니 김문희씨(47)는 1990년 6월 10일 식물원에 들어왔다. 식물원 야외 잔디광장에서 전국노래자랑이 열렸었다. 식물 안내를 하던 그녀는 부국개발이 인수하면서 식물 판매, 주차장, 매표소로 이리저리 팔려 다니다 지금은 잡초를 뽑는다. 1997년에 입사한 막내 강혜숙씨도 마찬가지다. 식물원 직원이 120명에서 35명으로 줄어든 사이 120만명이던 관광객은 40만명으로 쪼그라들었다. “회사가 미워해서 뽑으려 하면 할수록 뽑히지 않는 게 검질이에요.” 강영이 조합원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검질은 잡초의 제주도 말이다. “하루 일을 하고, 아침 점심 저녁에 선전전을 하고, 집에 가면 아이들 챙겨 먹이고, 힘들죠. 서로 상처가 생기기도 하고. 하지만 해고됐다가 싸워서 복직한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회사를 바꾸겠어요? 분회장 믿고 정년까지 가보자 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조합원들이 짧은 수다를 뒤로 하고 일터로 나간다. 식물원을 한 바퀴 돌아본다. 지역에만 분포하는 토종 식물들이 즐비한 여미지. 제주도는 아름다운 식물원 인수를 거부했고 돈밖에 모르는 회사는 사람들을 쫓아내기에 바쁘다. 온실식물원 입구,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조합원들이 벽면에 달라붙어 이끼를 없앤다. 웨딩드레스를 차려입은 신랑 신부들 사이로 보이지 않는 노동이 식물원을 가꾼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식물원 정문 앞에 선다. 관광객들이 ‘8년째 임금동결, 직원은 120명에서 35명뿐’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오한정 국장이 외친다. “제주의 아름다운 관광지를 찾아갈 때마다 관광지를 가꾸고 꾸미는 노동자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4·3 항쟁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는 강정마을로 향한다. 비바람이 불어온다. 야자수가 심하게 흔들린다. 기업의 이윤이라는 바람 앞에 작은 꽃과 나무들의 뿌리가 뽑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cco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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