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청춘’의 희망 만드는 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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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니온은 비합리적인 노동을 강요하는 ‘블랙기업’ 운동을 시작했다. 고용불안정, 장시간 노동, 직장 내 괴롭힘, 정규직 희망고문 등의 항목을 정했다. 오는 7월에는 청년착취대상 시상식도 연다.

새학년이 시작된 3월의 교정, 꽃샘추위에도 학생들의 옷차림이 화사하다. 백양로 공사장 펜스에 동아리를 알리는 대자보와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신입회원을 모집하는 동아리 천막촌, 손님맞이가 한창이다. “직(職)과 업(業), 조언을 줄 수 있는 선배는 어디에 있습니까?” 긴 현수막이 눈길을 잡는다. ‘최초 전략 마케팅학회’ 설명회 광고다.

대우관 1층에서 ‘한국 대학생 경제학회’가 신입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기업과 연계된 ‘잘나가는 학회’들이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손짓한다. 아무나 못 들어간다. 성적과 스펙이 별로면 받아주지도 않는다.

학교 안에 붙어있는 대자보. / 박점규

학교 안에 붙어있는 대자보. / 박점규

“작년에 1학년들에게 토론 모임을 제안했는데 10명도 안 왔어요. 그런데 ‘스펙 취업 걱정되니? 너네 한 번 스터디해보자’고 제안했더니 50명이 넘게 신청한 거예요.” 국문학과 4학년 박진영씨의 말이다. 취업에 나갈 때가 되면 1학년 때 딴 영어 점수는 기한이 만료돼 필요가 없는데도 학회나 기업의 인턴에 들어가기 위해서란다. 입시지옥에서 빠져나와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해야 할 신입생들이 입학과 동시에 취업준비생이 되는 우울한 오늘이다.

기업들은 학회를 이용해 마케팅과 설문조사를 하고, 대학생들은 아이디어와 열정을 제공한다. 일부 학생들이 그 기업에 취직하고 학회 라인이 만들어진다. 좋은 학회에 들어가려고 발버둥친다. 기업은 가만히 앉아서 청춘의 열정을 빼먹는다.

진영씨가 친구 얘기를 들려준다. 학점 4.3 만점에 4.0, 토익 950점, 말하기 레벨 7, 각종 경력과 자격증….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인턴으로 이랜드를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더 높은 점수, 더 나은 스펙을 가진 지원자가 수두룩했다. 한 방송국을 지원했던 선배는 4개월 동안 인턴생활을 했는데 채용계획이 취소됐다. 어느 종편 방송은 월 30만원을 주고 8개월을 인턴으로 부려먹었단다. 대학 문을 나서는 순간, 실업자이거나 비정규직이거나.

입학하자마자 취업 준비하는 교정
“달관세대라고요? 우리는 1년세대에요. 1년 뒤에 뭐가 되어 있을지 모르고 예측이 안 되는 세대죠.” 경제학과 2학년 양동민씨는 최근 <조선일보>가 일본의 ‘사토리세대’(득도한 것처럼 욕망을 억제하며 사는 젊은 세대)를 ‘달관세대’로 번역한 것에 대해 학생들이 시쳇말로 ‘빡쳤다’고 말한다. 진영씨가 같이 만드는 ‘20대가 말하는 젊은 미디어’ 미스핏츠(misfits.kr)에는 ‘달관세대론에 침 뱉기’가 연재되고 있다.

고환율 정책과 법인세 감면으로 국민 세금을 퍼부어 살찐 대기업과 정부는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다. 기성세대도 청년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거나 나누지 못했다. 학생들은 특목고, 유명대학, 스펙과 학회, 대기업을 목표로 미친 듯이 달린다. 1%를 향한 죽음의 경주에서 스러지는 청춘들에게 기성세대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마약을 건넨다. 청춘마저 장사에 이용한다. 진영씨는 “뽕에 취한 세대, 뽕에 당한 세대”라고 말한다.

뽕에서 깨어난 청춘들이 “장그래가 정규직 시켜달라고 했지 비정규직 연장해달라고 했냐?”며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자 ‘달관세대’를 꺼내며 다들 달관하고 사니까 불만 말고 조용히 살라고 말한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고 파견을 확대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을 ‘장그래법’이라는 <중앙일보>의 기사만큼이나 ‘빡치는’ 일이다.

2월 27일 알바노조 맥도날드 점거 시위. / 박점규

2월 27일 알바노조 맥도날드 점거 시위. / 박점규

개교 120년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본관 앞을 지난다. 설립자 언더우드 동상 앞에 연세대 송도 국제캠퍼스에서 해고당한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천막이 있다. 연세대 용역업체는 지난 11월 말 용역비 절감을 이유로 23명을 해고했다. 1학년이었던 동민씨는 친구들과 함께 대자보를 붙이고 며칠 만에 500명의 서명을 받았다. 한 친구는 ‘기숙사 노동권 수비대’라는 스티커를 제작했고 페이스북도 만들었다. 동민씨는 900억원짜리 지하주차장을 만들면서 23명의 해고노동자를 복직시킬 돈이 없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신촌 캠퍼스에서 복직을 바라는 2000개의 바람개비를 만들어 본관 주변을 수놓았다. 3월 2일 학교는 바람개비를 뽑아 쓰레기차에 실었다. 마침 이 광경을 목격한 동민씨는 노동자들과 함께 항의해 사과를 받아냈다. 쓰레기장에서 돌아온 바람개비가 봄바람에 얼굴을 흔든다.

교정을 나와 신촌 거리를 걷는다. 한 집 건너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 음식점이다. 커피를 주문하고 커피를 만드는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학교 안 생활협동조합에선 1100원인 아메리카노가 대기업 프렌차이즈에서는 4000원이 넘는다. 어학원도 학생들로 초만원이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고시촌과 자취방이 즐비하다. 화장실과 부엌을 같이 쓰는 고시촌은 월 25만원, 따로 쓰는 자취방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 50만원이다. 비싼 커피를 마시며 학원을 다니는 학생과 커피를 팔아 학교를 다니는 학생,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다녀도 청춘의 삶은 하늘과 땅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마약 권하는 사회
신촌역 3번 출구 맥도날드 매장이 혼잡하다. 주방과 카운터에서 12명의 젊은이들이 손님을 맞이한다. 햄버거를 만들어 포장하고 감자를 튀겨 건져내는 손놀림이 재빠르다. 밀려드는 주문은 잠깐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다. 한 시간의 노동 값으로 빵 하나를 고르기 힘든 최저임금. 청춘의 시간이 패스트푸드보다 빠르게 지나간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 이가현씨는 얼마 전 이 매장에서 벌어진 ‘알바노동자 최초의 행동의 날’을 잊지 못한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편의점, 커피전문점, 이벤트회사 알바를 했고, 지금은 대학 도서관에서 일한다. 대학 1학년 때 액세서리 판매점 ‘레드아이’에서 6개월 동안 일하다 아르바이트노동조합(알바노조)에 가입했다.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을 제기해 해고됐다가 복직했고, ‘레드아이’가 알바노조와 처음으로 단체협약을 맺기도 했다.

2월 27일 그는 알바노조 총회를 마치고 예고한 대로 맥도날드 매장으로 이동했다. 일부 조합원은 미리 매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경찰들이 건물을 에워싸고 가방 검사까지 했다. 매장 안팎에서 시위가 시작됐다. 매장에 ‘주차금지’를 본뜬 ‘알바갑질 절대금지’ 스티커가 나붙었다. 맥도날드에서 해고당한 동명이인 친구 가톨릭대 이가현 학생이 부당해고와 손님이 없을 때 강제 조퇴시키는 일명 ‘꺾기’를 규탄했다.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가면을 쓰고 발언을 했다. 신촌 일대를 돌며 ‘청춘 알바들의 퍼레이드’를 이어갔다. “맥도날드 알바분께서 응원해주고 사람들이 깔깔깔거리고 축제 분위기였어요. 알바노조가 청년들의 관심을 재밌게 꾸며내 속 시원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조합원 300명의 작은 알바노조가 일으킨 변화는 크다. 알바몬과 맺은 협약과 알바 권익보호 운동은 최근 초대박 히트를 친 알바몬 광고로 이어졌다. “시급 5580원 쬐끔 아주 쬐끔 올랐어요. 이마저도 안 주면 히잉~.” 걸그룹 걸스데이 혜리의 알바몬 광고에 맞서려던 ‘사장몬’ 카페는 여론의 압력으로 자진 폐쇄했다. 그는 신입생들을 만나 알바노조를 알리고 학교에서 알바상담소와 알바기자단을 운영할 예정이다.

신촌의 한 커피전문점. 청년유니온 조합원 김영씨(23)가 녹차라떼를 주문한다. 팥빙수, 스무디는 만들기도 어렵고 설거지도 힘들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5일 전까지 롯데시네마 합정점에서 300일 동안 일했다. 관장과 관리자 5명은 정규직, 검표와 매표, 매점에서 일하는 30명은 10개월 계약직이다. 팝콘 매점도 직영으로 운영한다. 5500원짜리 팝콘의 원가가 600원이기 때문이다. CGV는 원하는 학생들에게 1년 이상 일하게 해주고 퇴직금도 준다는데 롯데시네마는 얄짤없다. 월 80만~90만원 받아 고시원비 내고 생활비 하면 빈털터리다. 얼마 전에는 통신비를 못 내 휴대폰마저 끊겼다.

연세대학교 동아리 신입회원 모집. / 박점규

연세대학교 동아리 신입회원 모집. / 박점규

정규직보다 임금 30% 더 받는 호주 알바
그는 19살에 어학연수와 취업을 병행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가서 일했다. 1년간 일한 샐러드공장의 시급은 2만원으로 정규직보다 30% 더 많았다. 2년 동안 돈도 제법 모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직원들이 관리자들에게 할 말 다 하는 직장문화였어요. 한국에 돌아왔는데 어린 대학생이라고 무시하는 권위주의와 위계질서가 정말 힘들더라고요.”

한국에 돌아와 청년유니온에 가입하고 2013년 12월 롯데호텔 뷔페식당에서 주방보조 알바로 3개월 일했다. 호텔은 일용직이라며 매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게 했다. 총 84번 계약서를 썼다. 호텔에 취업규칙 열람을 요구했다가 해고당했지만 중앙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내 승소했다. 언론을 통해 일용직이어도 함부로 해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알려졌다.

“예전에는 빨리 가라면 가고 연장근무하라면 아무 말 못했는데, 이제는 ‘꺾기’가 발생하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해요. 내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 같아 좋습니다.” 김영씨는 호텔에서 일하면서 산학협력에 따른 현장실습을 나온 호텔조리학과, 경영학과 학생들을 만났다. 체계적인 교육은 없었고 시간당 2000원도 안 되는 실습비를 주며 부려먹었다. 청년유니온은 호텔, 관광, 조리, 외식, 식품 관련 학과가 현장실습을 하는 59개 업체의 4년치 산학협력제도 자료를 분석했다. 시급으로 환산한 실습비는 평균 1684원으로 지난해 법정 최저임금의 32.3%였다. 올해는 학생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도록 사업을 해볼 작정이다.

“청년유니온 사무실이 편하니까 종종 가는 편이에요.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청년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고 잘못된 것을 조금씩 개선시켜 가는 것이어서 참 좋습니다.” 신촌의 커피숍으로 야간 알바를 하러 나가는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노량진을 지난다. 외환위기 이후 안정된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시작된 공무원 고시 열풍, 노량진 학원가는 불황이 없다. 오는 4월 치러지는 9급 공무원 시험은 3700명 모집에 19만987명이 지원해 평균 51.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교육행정은 10명 모집에 7343명이 지원해 무려 734대 1이다. 주식 상장과 일감 몰아주기로 이건희 아들 이재용은 재산을 65배, 정몽구 아들 정의선은 102배 늘리는 ‘신공’을 발휘했다. 재벌 부모를 가지지 못한 청춘들은 말단 공무원이 되기 위해 낙타를 타고 바늘구멍을 찾아 헤맨다. 노량진 청춘 장사는 오늘도 호황이다.

영등포 ‘마찌꼬바’ 골목 안에 자리 잡은 청년유니온 사무실. 영세한 공구상회 처지가 2015년 대한민국 청춘을 닮았다. 2월 28일 총회를 마친 젊은 노조 간부들이 열띤 토론을 벌인다. 앳된 친구가 사무실을 찾았다. 지난해 2월 출범한 ‘청소년유니온’ 회원 유수정씨(19)다. 지난해 9월 63빌딩 연회장에서 주말마다 알바를 했는데 주휴수당과 준비 및 마감시간 임금을 받지 못했다. 청소년유니온이 호텔과 웨딩홀에서 일한 청소년 120명을 조사한 결과 유급휴일수당은 90%, 연장수당은 88%가 받지 못했다. 수정씨는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넣어 63빌딩이 떼먹은 돈 7만9000원을 되찾았다. “기분이 너무 좋았죠. 부모님께 용돈 안 받고 벌어서 생활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더 공부해보고 싶어서 이렇게 가끔 놀러 와요.”

대기업도 법을 지키지 않고 돈을 떼먹는데,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청년유니온은 비합리적인 노동을 강요하는 ‘블랙기업’ 운동을 시작했다. 고용불안정, 장시간 노동, 직장 내 괴롭힘, 정규직 희망고문 등의 항목을 정했다. 오는 7월에는 청년착취대상 시상식도 연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마약을 건네는 사회에서 조합원 978명, 다섯 살 된 젊은 노조가 대기업노조도 하지 못하는 우리 시대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cco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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