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의 협동조합이 민주적인 시민의식을 확산시키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비롯한 사회운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믿는다. 지방정부도 힘을 실어주고 있어서 사업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협동조합과 노동자들의 기본 권리가 충돌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름휴가를 하루 앞둔 2012년 7월 27일. 부산의 한 대학생은 일당 10만원 아르바이트 광고를 보고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했다. 경비업체 컨텍터스는 “노조를 막으러 간다”고 설명했다. 순간 고민스러웠다. 일단 차비가 아까웠다. 열흘만 일하면 100만원을 벌어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서울 사는 몇 명을 빼고 1500명이 버스에 올랐다. 관광버스는 인천 문학경기장을 거쳐 원주 문막공단에 있는 자동차부품사 만도에 내렸다. 검은 옷으로 갈아입은 그는 공장 문에 배치됐다.
이날 새벽까지 공장에 남아 있던 안원수씨(36)는 용역을 실은 버스의 방향이 만도가 아니라는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파업의 강도를 조금씩 높여가던 금속노조 만도지부는 이날 8시간 파업을 결정했고 휴가로 이어져 공장에는 사무직만 남아 공장을 돌리고 있었다. 오후 2시30분 회사에서 직장폐쇄를 알리는 문자가 왔다. 공장은 컨테이너로 완전히 봉쇄됐고, 새카만 옷을 입은 용역경비들이 회사를 장악했다.

금속노조 만도지부 노조사무실. / 박점규
이명박 대통령은 “연봉 9500만원 귀족 노조가 파업하는 나라는 없다.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떠들었다. 문막읍사무소에 모여 투쟁계획을 토론하던 문막, 평택, 익산공장 노조 지도부는 다음날 회사와 함께 금속노조 탈퇴 선봉에 섰다. 곧이어 기업노조가 설립됐다.
“하계휴양지에서 직장폐쇄 소식을 들은 조합원들이 퍽퍽 한숨 쉬고 술만 먹다가 다음날 복귀했어요. 최악의 휴가였죠. 지도부가 넘어가자 열흘 만에 70%가 회사로 넘어갔죠.”
그날을 회상하는 이병수 만도지부장의 목소리가 잦아든다. 1998년 9월 3일 김대중 정권 때는 경찰병력이 투입됐고, 2012년 7월 27일 이명박 정권에선 용역깡패가 들어왔다. 1998년에는 2432명이 연행됐다. 100여명이 사법처리되고 1071명이 해고됐다. 열패감이 있었지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서 싸웠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2012년 해고자는 3명뿐이지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다는 패배감이 가슴 깊이 파였다.

언어심리임상센터 사회적 협동조합 두루바른. / 박점규
만도 문막공장의 꿋꿋한 민주노조
만도는 자동차의 제동, 조향, 완충장치를 만드는 부품회사다. 2013 국가브랜드대상에서 자동차부품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했고, 세계 100대 자동차 부품업체 중 46위에 올랐다. 문막, 평택, 익산공장에서 4134명이 일한다. 문막공장에서 1300명이 일하는 만도는 강원도에서 제일 큰 회사에 속한다.
만도는 민주노조 운동에서 모범이었다. 2001년 2월 대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산업별 노조인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기업의 담을 넘어 같은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하나로 뭉치는 데 앞장선 것이었다. 2003년에는 가장 먼저 주5일 근무제를 시행했다. 현대·기아 등 대기업 노조가 성과급에 매달릴 때 기본급을 높였고, 비정규직 노동자도 소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노동조합은 임금만 올려주는 자판기가 되어 있었다. 과거에는 200~300명씩 서울에 가서 노동자대회를 했는데 간부들도 잘 움직이지 않았다. 원주지역의 연대투쟁에도 소홀했다. “회사가 노조를 깨기 위해 철저하게 기획하고 있을 때 우리는 너무 안이하게 있었던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오전 노동을 마친 노동자들이 노조사무실을 찾는다. 회사의 온갖 회유와 탄압에도 꿋꿋하게 버티는 조합원들이다. 금속노조 조합원 50명 중에서 간부 활동을 한 번도 안 했던 이들이 절반이다. 돈 몇푼에 자존심을 팔지 않겠다는 노동자들이다. 전국에서 제일 좋은 노동조건을 만들어낸 건 민주노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곪으면 반드시 터집니다. 우릴 믿고 올 수 있도록 조합을 건강하게 만들고 내부 단결력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젊은 안원수 사무국장이 힘주어 말한다.
이병수 지부장이 여주로 향한다. 지난 3월 10일 익산을 출발해 평택을 거쳐 문막공장까지 180㎞를 걸어오고 있는 해고자 3명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김창한 전 지부장과 해고자들이 내디딘 걸음처럼 더디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비리의혹으로 한국석유공사와 경남기업을 압수수색한다는 소식이다. 노동조합 입구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사필귀정’이란 글귀대로 올바르지 못한 것이 임시로 기승을 부리는 것 같지만 결국 정의로 돌아간다.
한국 협동조합 1번지 원주 ‘밝음의집’이다. 소외된 서민과 영세상공인을 위한 원주밝음신협.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1966년 세운 원주 신용협동조합이 뿌리다. 원주한살림·원주생협·원주의료생협 등 19개 협동조합, 27개 회원단체, 조합원 3만5000명, 연간 매출액 300억원…. 협동조합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줄을 잇는다.
전국 최초로 협동조합 지원센터가 생겼고, 밝음신협은 국무총리 표창도 받았다. 최문순 강원도 지사는 “원주는 협동조합의 메카이자 중심지다. 강원도에서도 협동조합의 발전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익산에서부터 원주까지 걸어온 만도 해고자들. / 박점규
협동조합과 노동의 상생적 만남
원주의 협동조합이 만든 일자리는 얼마나 될까? 밝음신협 23명, 한살림 25명, 원주생협 10명 등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이 고용하고 있는 직원은 200명 정도다. 급여나 복리후생도 힘들다. 밝음신협과 원주한살림이 상여금 400%에 명절보너스를 주는 정도이고, 나머지는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일반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영세업자입니다. 낙후되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기도 어렵고요. 적정한 처우를 하기가 대단히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박준영 이사장의 말이다. 몇 년째 임금이 동결됐다. 시간이 흐르면 협동조합 운동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퇴색된다.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는 한살림에 있을 때 직종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교육훈련과 해외연수, 상여금, 복리후생을 동일하게 적용했다. 만족감이 높아졌다. 설 명절을 앞두고 주문한 물건이 많이 팔리지 않았다. 그래도 명절 전날부터 쉬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매장을 열었다. 농민들이 어렵게 재배해 직거래한 과일과 야채가 매장에서 상하게 놔둘 수 없다는 뜻이었다. 자발적인 마음에 대해 보상과 휴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년에 2주 정도 유급휴가를 주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사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의사결정기관인 이사들의 마인드에 따라 달라집니다. 노동문제를 잘 모르면 선심을 쓴다고 생각하게 되죠. 노동과 협동조합이 갈등이 아니라 상생적으로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유럽이나 일본과는 달리 한국의 협동조합 운동은 국가에 의해 원천봉쇄됐다. 1차 산업을 통한 가공 유통을 농협·수협·축협 등 정부가 독점했고, 협동조합 기본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소비자협동조합 외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서비스 영역을 중심으로 노동자 협동조합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협동조합 장소정 해설사와 함께 원주시청 앞 ‘두루바른’ 언어심리임상센터를 찾았다. 작은 방마다 치료사들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다른 센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큰 사무실이 있다. 치료사들이 모여 아이들에 대해 토론하기 위한 공간이다.
김성윤 언어치료사(30). 그는 한림대 언어청각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2011년 한 대학병원에서 2년 동안 일했다. 매년 5000명이 졸업하는데 국립병원에 취직하는 경우는 극소수다. 치료사 90%는 사립병원이나 사설센터에서 일하는데, 아이 한 명 치료비를 병원이나 센터와 비율로 나눈다. 단기계약직 비율제 노동자다. 1년차와 20년차 치료사 월급 차이가 없다. 센터나 병원은 교육비를 지원하지 않는다. 대학 4년 배운 걸 우려먹게 된다. 치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학병원은 돈을 더 벌기 위해 1년에 한 번 해도 되는 평가를 두세 달 만에 하라고 한다.
“좋은 일 하면서 즐겁게 일하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죠. 월급도 적고 힘들긴 하지만 행복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7명의 치료사들은 2014년 1월 18일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5월 보건복지부 인가를 받았다.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치료사들이 인사노무, 홍보마켓팅, 회계 등을 나눠 맡았다. 치료가 끝나면 늦게까지 남아 함께 토론했다. 협동조합에 대한 공부도 계속했다. 1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동료 둘은 육아휴직에 들어갔는데 복직하면 근무시간을 10시부터 5시까지로 단축할 계획이다. 일손이 부족해 4월에는 4명을 더 채용한다. 월급도 올리기로 했다. 협동조합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좋은 치료를 제공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언어치료사들이 만든 사회적 협동조합
원주시 근로자종합복지회관 대강당이 빨간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로 가득 찼다. 원주시에서 가로 청소를 하는 환경미화원들. 중부일반노조 가로청소지회 조합원들이다. 지회장을 선출하는 총회를 마치고 업체별로 모여 퇴직연금에 대해 토론한다. 한모씨(63)는 2005년 1월부터 원주시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했다. “10년 전에는 새벽 2∼3시에 나와서 저녁까지 일하고, 일요일과 명절도 없었어요. 노조 만들고 나서 8시간 노동에 휴일도 생겼죠. 어느 정도 지낼 만하다고 했는데 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이 불안한 건 바뀌지가 않네요.”
중부일반노조 이선인 위원장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최근에 노조에 가입한 철원의 환경미화원이다. “업체 사장이 1년마다 계약하면서 매년 퇴직금을 입금한 후 현금으로 찾아 가져오라고 한 거예요. 근무시간에 자신이 소유한 주유소와 과수원에서 일을 시켰고요. 시청에서 받은 노무비도 엄청 떼어먹었고요.” 예전 원주의 우리환경과 판박이다. 노조는 사업주를 경찰에 고소하고 철원군청을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다. 군이 용역업체에 지급하는 용역비 중에서 직접노무비는 68~70%, 간접노무비는 15% 정도다. 회사 이윤이 10%, 일반관리비가 5%다. 50억원이 사업비라면 35억원을 인건비로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10억원을 지급했다는 것이다.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군청의 일이고, 공적인 일이잖아요. 군청에서 직접 고용하면 예산을 절약할 수 있는데 민간위탁으로 혈세를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중부일반노조가 없었다면 시청과 시민들을 상대로 한 날도둑들이 여전히 판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
정인탁 민주노총 원주지부 사무국장(38)이 2011년의 일을 전해준다. 원주시는 재활용 선별장 민간위탁을 명산환경에서 다자원이라는 사회적 기업으로 바꿨다. 중부일반노조 명산환경 노동자들은 고용승계와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기대와 달리 교섭은 난항이었다. 파업과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은 후 다자원은 원주시의 민간위탁 선정에서 탈락했다. “사회적 기업이 살아남으려고 공공기관의 민간위탁 사업을 맡거나 인력공급 사업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다른 일자리를 가져오는 거죠.” 며칠 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모 협동조합과 고용된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전화였다. 그는 원주의 협동조합이 민주적인 시민의식을 확산시키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비롯한 사회운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믿는다. 지방정부도 힘을 실어주고 있어서 사업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협동조합과 노동자들의 기본 권리가 충돌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 국장과 함께 원주역으로 향한다. 택시에 ‘에어컨 청소 이젠 믿고 맡기세요. (예비) 사회적 기업’ 광고가 붙어 있다. 이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좋은 회사일까? 원주역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나는 그대, 그대는 나다. 협동하는 세상’이라는 문구와 함께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벽화가 보인다. “내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던 무위당 선생, 그를 기리며 만들어지는 협동조합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행복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ccom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