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약-예측불가능한 잔물결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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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때 만나지 않았더라도 우리 사랑하게 됐을까?” 연인들이 흔히 묻는 물음이다. 누구나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다.

마이클 수지 감독의 영화 <서약>은 묻는다. 열렬히 사랑했던 기억을 지웠을 때, 그래도 당신은 그를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리오와 페이지는 주차장에서 우연히 눈이 마주친다. 리오가 기억하는 ‘내 삶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다. 부부가 됐다. 그리고 약속한다. “그 어떤 순간에도 열렬히 사랑하고 아끼겠습니다. 그 어떤 장애물이 우리를 갈라놓는다고 해도 당신에게 돌아갈 길을 찾겠습니다.” 눈 오는 크리스마스 날 밤. 눈길에서 두 사람은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한다. 아내 페이지는 기억의 일부를 잃는다. 하필이면 남편 리오와 사랑했던 기억이다. 페이지는 리오를 만나기 전까지만 기억을 한다. 이제 페이지에게 리오는 낯선 남자일 뿐이다.

리오는 사랑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때 페이지에게 옛 약혼자 제레미가 나타난다. 페이지의 기억 속에 제레미는 멋진 연인으로 남아 있다. 페이지의 선택은 리오일까, 제레미일까.

남편 리오는 말한다. “삶을 강타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들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예측불가능한 잔물결 효과(ripple effect)를 동반한다.” 잔물결 효과란 호수에 돌을 던지면 돌이 떨어진 지점부터 동심원의 물결이 일기 시작해 가장자리까지 물결이 퍼지는 현상을 말한다. 하나의 큰 사건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속 경제]서약-예측불가능한 잔물결 효과

경제도 종종 잔물결 효과를 차용해 각종 현상을 설명한다. 한 국가에서 시작된 경기침체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웃 국가로 확산되는 경우가 있다. 1997년 외환위기도 그랬다. 동남아에서 시작된 위기가 한국까지 퍼졌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한 국가의 신용등급 하락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비슷한 나라로까지 위기가 확산되는 경우도 있다. 2010년 그리스의 국가채무 위기는 나머지 PIGS 국가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으로 퍼져 유로존 전체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가 구조개혁과 긴축을 요구하는 유럽연합에 버틸 수 있는 것도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의 잔물결 효과 때문이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다른 국가들 사이에 유로존 탈퇴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고, 이 경우 유럽연합의 경제공동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국제금융시장은 갈수록 밀접하게 얽혀 잔물결 효과가 쉽게 일어날 수 있다.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거나 앞선 기업문화를 발휘해 주변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잔물결 효과로 볼 수 있다. 애플이 개발한 아이폰은 정보통신(IT) 시장 전체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노키아는 문을 닫았고,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로 우뚝 섰다. 위기를 맞았던 하이닉스반도체를 살린 것도 아이폰이었다. 리오가 페이지를 주차장에서 만난 그 짧은 순간이 잔물결 효과를 일으켜 두 사람을 부부로 이끌었다. 반대로 교통사고의 잔물결 효과는 그들의 이혼으로 끝난다. 리오는 생각한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순간들은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통제할 수가 없다. 소용돌이에 맴도는 조각들이 어디로 떨어질지 기다릴 뿐….”

작은 사건이 뜻하지 않은 큰일을 일으키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비 효과’다. 서울에서 공기를 살랑이게 한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달 베이징에 폭풍우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잔물결 효과’든 ‘나비 효과’든 세상만사는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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