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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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초 정도 됐을까. 3월 10일 오후 2시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태운 차량이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빠져나갔다. 정문에서 미리 기다리던 엄마부대봉사단 등 보수단체 회원 30여명은 성조기와 피켓을 흔들며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자신들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엄마부대봉사단 회원들은 “우린 정말 순수하게 엄마의 마음으로 나온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리퍼트 대사와 미국 정부, 국민들에게 미안하다는 차원에서 석고대죄(거적을 깔고 엎드려 임금의 처분을 기다림)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퍼트 대사는 피습 이후 “같이 갑시다”란 말을 남겨 한국인들에게 감동을 줬다. 이 발언을 접한 한국 시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리퍼트 대사의 쾌차를 기원했다. 대부분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차원이었다. 문제는 기본적인 예의를 넘어서는 일부의 과도함에 있었다.

3월 10일 신촌 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엄마부대봉사단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 백철 기자

3월 10일 신촌 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엄마부대봉사단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 백철 기자

피습 2일 뒤인 3월 7일, 일부 기독교 신도들은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리퍼트 대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부채춤과 난타 공연을 펼쳤다. 미국대사관을 향해 큰절을 올린 사람도 있었고, 애견인인 리퍼트 대사에게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로 개고기를 선물한 사람도 있었다. 서울시내 곳곳에서 보수단체의 집회가 열렸고, 집회에는 성조기와 태극기가 휘날렸다. 같은 보수세력 안에서도 “마음은 알겠지만 표현방법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보수단체 일각에서는 ‘나는 샤를리다’를 본떠 ‘나는 리퍼트다’란 구호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이 구호는 시민들의 호응을 거의 이끌어내지 못했다. ‘나는 샤를리다’ 구호는 표현의 자유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지키자는 외침이었다. 반면 ‘나는 리퍼트다’ 구호는 그런 보편적인 가치를 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거리에 나온 엄마부대와 고엽제 전우들은 “리퍼트 대사님 사랑합니다”를 외쳤지만 얼마 안 가 ‘종북 척결’ 발언으로 변질됐다. 불의의 공격을 당한 사람에 대한 미안함과 쾌차를 기원하는 순수한 마음마저 이념화한 것이다. 이 정도면 병 아닐까.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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