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사에 대한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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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여적]미 대사에 대한 테러

1989년 10월 13일 새벽 6시 30분. 서울 중구 정동 미대사관저에 괴청년들이 난입했다. 순식간이었다. 담을 넘자마자 이들은 가지고 온 사과탄과 사제폭탄 1발을 터뜨렸다. 폭발음을 들은 경비원들이 달려오자 이들은 다시 폭발물 2발을 터뜨렸다. 이들은 쇠파이프로 현관 유리창을 부순 뒤 거실로 들어가 “공작정치 주범 그레그는 물러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응접실에 있던 소파와 의자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농성했다. 이들의 농성은 45분 만에 진압됐다. 당시 한국에 막 부임했던 도널드 그레그 대사는 창문을 넘어 옆집으로 ‘피신’해 불상사를 피할 수 있었다. 대학생들은 ‘그레그 처단과 민족 자주권 쟁취를 위한 서총련 반미구국결사대’ 소속이었다. 당시 대학교 4학년이었던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그 구국결사대의 일원이었다.

학생들이 도널드 그레그를 ‘공작정치의 주범’으로 지목한 것은 1973년부터 1976년까지 유신시절 그가 한국 CIA 지부장을 역임했던 경력 때문이었다. 그레그가 CIA 지부장을 역임할 당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최종길 서울대 교수 고문 사망사건과 관련해 CIA 본부 지침을 어기고 청와대에 항의한 사건은 유명한 일화다.

2014년 1월, 그레그 전 대사 부부는 25년 전 자신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한 괴한 중 한 명을 자택에 초대한다. 정청래 의원이다. 정 의원은 그때의 ‘무단침입’을 사과했다. 그레그 전 대사도 “미대사관저에 들어갔던 그 심정, 그 초심을 잊지 말고 의정활동을 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그가 미대사관저에 쳐들어갔던 학생들의 순수한 충정을 이해해준 것이다.

3월 5일 테러를 당한 마크 리퍼트 대사는 오바마 미 대통령의 최측근 외교안보 전문가다. 오바마가 상원의원 시절 보좌관이었던 그는 2007년과 2008년 휴직을 하고 이라크전 정보장교로 복무해 훈장을 받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리퍼트 대사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수술을 마친 후 그가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첫마디는 “여러분의 응원에 감동받았습니다. 같이 갑시다”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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