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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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여적]표현의 자유

1998년 헌법재판소에서 눈길을 끄는 판결이 나왔다. ‘음란한 표현은 헌법이 보호하지 않는다’는 요지였다. “음란이란 인간 존엄 내지 인간성을 왜곡하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 표현으로서 오로지 성적 흥미에만 호소할 뿐 전체적으로 보아 하등의 문학적·예술적·과학적 또는 정치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가치가 있는 표현만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10년 만인 2009년 판례를 변경한다. “음란 표현도 헌법 제21조가 규정하는 언론·출판의 자유의 보호영역에는 해당하되, 다만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 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제한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지난 1월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전 세계 지도자들이 일제히 비난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보편적인 믿음에 대한 도전행위”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위로 전문만 프랑수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냈는데, 표현의 자유가 훼손돼 마음 아프다는 내용은 없었다. 대신 며칠 뒤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에 대한 박 대통령 명예훼손 재판이 열렸다.

얼마 전 인터넷에 있는 일부 막말 댓글의 주인공이 현직 판사라는 사실이 보도됐다. 그가 올린 글들은 ‘하등의 문학적·예술적·과학적 또는 정치적 가치’가 없는 게 대부분이었다. 인터넷과 법조계에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익명을 언론이 밝혀 보도했다는 점,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한계가 어딘지였다. 하지만 시비를 따지기도 전에 판사가 사표를 내면서 논란이 잦아들었다. 샤를리 에브도의 경우 표현과 종교가 대립했고 적정선을 조율 중이다. 막말 판사의 경우 표현과 표현이 부닥쳤기 때문에 어느 쪽이 승리하든 상처를 입는 것도 표현이었다. 혐오 표현이라는 기준은 극심한 인종차별과 유대인 학살 역사를 거쳐온 미국과 독일의 사고다. 다른 나라는 쓰는 곳이 없다. 우리 현실에 맞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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