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을 만드는 것은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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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정신병을 만드는 것은 사회다

분열병과 인류
나카이 히사오 지음·한승동 옮김 마음산책·2만2000원

일본 최고의 정신의학자로 꼽히는 나카이 히사오의 대표작 <분열병과 인류>가 국내 초역되었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가 뽑은 ‘동아시아 100권의 인문도서’에 선정된 덕에 1982년에 나온 책이 늦게나마 소개된 것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동아시아출판인회의가 이런저런 활동을 해도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동아시아의 지성을 모으고 교류하는 모임이 없었다면 이런 책이 있는 줄 알기나 했을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만큼 책이 놀랍고 인상적이었던 까닭이다.

<분열병과 인류>는 분열병을 인류사적으로 조망한 1장, 일본 사회에 두드러진 집착기질을 다룬 2장, 서구 정신의학의 역사를 개관한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제와 서술 모두 독립적인 각 장들을 관통하는 것은 부제에 적시한 대로 ‘정신병은 어떻게 만들어졌나?’라는 문제의식이다.

정신병은 어떻게 만들어졌냐니 이상한 질문이 아닌가. 그것은 ‘정신병이 왜 생겼나?’라는 통상적인 질문과는 다르다. 후자가 정신병의 원인과 해법을 가족로망스에서 찾고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같은 개인적 내상을 천착하는 것과 달리, 나카이 히사오의 질문은 정신병이 병이 아니라는 전제 혹은 가정에서 출발해 누가(무엇이) 어떻게, 왜 그것을 병으로 만들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이로부터 우울증이나 분열병 같은 정신병을 만드는 것은 사회이며, 그것을 병으로 발견하는 것도 사회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가령 분열병의 경우 희미한 징후를 강하게 포착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끼고 예측하는 기질에서 발전하기 쉬운데, 이런 분열병 친화적 기질은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병증이라기보다 오히려 미덕이었다. 동물의 발자국을 읽고 바람의 냄새를 맡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능력이니까. 그러나 수렵·채집에서 농경 단계를 거쳐 산업사회로 넘어가면서 이런 예민한 기질은 분열·정신병으로 낙인찍히고 대신 정돈과 질서를 강조하는 집착기질이 다수자의 윤리로 정립되기에 이른다.

물론 필자가 분열병은 병도 아니라거나, 근면을 내세워 강박적 집착기질을 부추기는 문명사회보다 원시사회가 훨씬 낫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는 다만 분열병자를 집착기질자로 만드는 것이 ‘치료’가 아니며, 문명화가 곧 ‘홈런’(발전)은 아니라고 말한다. 정신병 치료란 병자와 사회의 타협이기도 하니, 이런 타협을 허용하고 기질적·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열린 사회가 건강한 삶의 조건이란 것이다. 그가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소외되어 온 인류역사야말로 ‘도착’(倒錯)이며 그걸 홈런이라고 착각하는 인류에 비하면 분열병의 ‘도착’은 사소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지배의 윤리만을 인정하는 획일적인 시선, 닫힌 사회를 경계하기 위함이다.

300쪽의 많지 않은 분량이건만 <분열병과 인류>는 대담한 문제의식과 예리한 실사구시와 방대한 지식으로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그러므로 당연히 일독을 권하고 싶으나 일본어 투의 문장과 만기(万器), 시호(仕法), 일신구현성, 상동적(常同的) 같은 어색한 한자 표현, “syntagmatism에서 paradigmatism으로의 전환” 식으로 영어를 그대로 내세운 요령부득의 번역이 영 마땅찮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 출판의 수준이라면 외면하는 것도 능사가 아닐 터, 병을 알아야 치료도 할 테니 일단은 읽어 보기를.

<김이경 소설가/독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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