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백담사 템플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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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로 드는 수심교(修心橋) 주변 계곡의 돌탑이 독특한 풍경을 선사한다. 백담사나 설악산을 찾는 이들이 소원을 담아 쌓은 돌탑으로, 이듬해 여름 장마철에 큰물에 휩쓸려 허물어지면 다시 또 쌓아지는 백담사의 대표적 풍경이 되었다.

강원도 인제 백담사. 그 깊은 절집을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 것은 기쁜 일이었다. 2시간 반 남짓 달리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백담사는 산중의 격리감으로 마음을 들여다보기에 좋은 터라 했다. 멀지 않은 거리에 마음이 있으나, 쉬이 마주치지 못하고 있던 터이기도 했다. 매서운 바람의 통로에 앉으면 물소리, 바람소리 가운데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용돌이치는 ‘나’의 마음을 물으러 설악산 백담계곡에 올라 산문에 든다.

백담사는 내설악의 절경을 찾는 산행객들의 발길이 들러가는 출발점이다.

백담사는 내설악의 절경을 찾는 산행객들의 발길이 들러가는 출발점이다.

바람의 길목, 맑은 물길의 통로
인제군 북면 용대리의 백담마을. 예전에야 가는 길이 험해 ‘인제 가면, 언제 오냐’란 농이 있을 지경의 두메산골이었다. 이제 교통이 수월해진 덕으로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로 대략 두어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용대리는 용바우 아래라 하여 용의터 또는 용대동이라 불리기도 하고, 예전에는 눈바람이 많은 골짜기인 터에 ‘큰 바람마을’이란 뜻으로 풍대리라고 불렀다. 겨울 추위가 지독한 탓인데, 유난히 바람이 매섭고 늦봄까지 추위가 이어지는 까닭에 삶의 방편으로 동해 명태를 바람에 널어 말리는 황태덕장으로 끼니를 이어간 골골 두메고을이었다. 이 마을의 겨울은 엄동설한(嚴冬雪寒)이란 말에 걸맞게 일찍 시작되어 길고도 길게 이어진다. 11월이라지만 입동이 채 되기도 전인 지난달 벌써 서설이 내린 터이다. 마을은 대청봉(1708m)을 중심으로 한계령과 미시령의 서쪽 내설악 깊은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골짜기를 따라 동해의 바람과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만나 바람의 통로가 되고, 대청봉 아래의 거의 모든 물길이 이곳으로 모인다. 이 깊은 산중. 정신을 퍼뜩 깨우는 차가운 바람의 길목, 맑은 물길의 통로에 바로 백담사가 자리하고 있다.

백담사와 설악산을 찾는 산행객들이 쌓아올린 돌탑들이 장관을 이룬다.

백담사와 설악산을 찾는 산행객들이 쌓아올린 돌탑들이 장관을 이룬다.

동서울버스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백담사 입구에 이르고, 다시 매표소에서 절집까지는 마을주민들이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해 오를 수 있다. 대략 8㎞ 남짓의 거리를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로 구절양장으로 이어진다. 계곡을 옆에 두고 아슬아슬 산길을 오르면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원시림과 고사목들이 울창하게 숲을 덮고 있다. 단풍보다 더 알록달록한 차림새의 등산객들이 이미 비켜 앉은 가을볕에 바래진 산풍경을 아쉬워하면서도 내설악의 절경을 기대하는 설렘을 감추지 못한다. 이미 가을은 막바지에 이르고 가파른 계곡을 따라 아랫마을까지 산중의 바람이 내리치는 모양새다. 마을에서는 3월부터 11월 무렵까지 계곡을 따라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이용해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하지만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겨울이면 길이 얼어붙어 운행을 중지한다. 때문에 산중에 들어서려면 한 시간 이상을 걸어서 올라야 하는 수고를 해야만 한다. 때문에 이 절집은 들고남에도 수고가 따른다. 그 온전한 격리감만으로 예전부터 많은 수행자들이 찾던 수행터였고, 요즘에 이르러서는 온전히 ‘나를 찾는’ 템플스테이로 인기가 높다.

백담사 주변 하천.

백담사 주변 하천.

조선 전기의 문신 하연(河演)은 시를 통해 인재의 ‘여러 산들이 깊고 멀어서 수레와 말 탄 손님 오는 일 없는데’라며 이곳의 폐쇄적 격리감을 표현하였다. 또 백담사에 딸린 영시암(永矢庵)은 그 격절감만으로 세워진 암자다. 영시암은 ‘영원히 쏜 화살’이라는 뜻으로, 아버지와 형제를 잃은 김창흡이 세상과 단절을 선언하고 창건했다. 영시암의 시(矢)자는 화살시로,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원히 속세로 나아가지 않겠다는 비장감이 담겨 있다. 조선 후기의 문장가인 김삼연은 <영시암기>를 통해 휴양하려는 이들과 기(氣)를 기르려는 선비들이 사방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본래 설악산 백담사의 백담(百潭)은 100개의 담(潭)에서 연유된 이름이다. 신라 진덕여왕 1년(647) 자장율사가 지금의 설악산 장수대 안내소 인근의 한계사터에 절을 세우고 아무도 범접치 못할 산문을 세웠다. 하지만 창건 이후 1783년까지 무려 7차례에 걸친 화재가 발생하자 자주 절터를 옮기게 된다. 이에 당시 주지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가 몇 개 있는지 세어보라고 해서 세어보니 꼭 100개였다고 한다. 이후 이름을 백담사로 고쳤고, 그 뒤로는 화재가 없었다고 전하여진다. 그러나 1915년 겨울밤에 화재를 당해 다시 불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백담계곡을 오르며 피어나는 생각은 각양각색이다. 바람의 한터에 자리한 백담은 바람벽으로 빙 둘러싸인 경계의 격절감으로 담(壁)이요, 수심교를 건너며 드는 생각은 백 가지의 사연 즉, 백 가지의 이야기 담(談)이요, 절집에 들어앉아 마주하며 드는 마음은 담담할 담(淡)이다. 다시 봉정암을 오르며 드는 기운은 당차고도 담대할 담(膽)이어서 그 터의 기운이 묘하고도 신비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어찌하였건 이 절집에서 만해 한용운이 불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죄 많은 위정자가 속세와의 고립과 격리감으로 한동안 유배되듯 칩거하여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만해 한용운은 동학농민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곳의 부속암자인 오세암(五歲庵)에 들어 백담사를 오가며 10여년을 머물면서 <조선불교유신론> <님의 침묵> 등을 집필하였다.

백담사템플스테이는 당당한 나를 찾아 꿈과 희망과 도전의 마음을 다질 수 있다.

백담사템플스테이는 당당한 나를 찾아 꿈과 희망과 도전의 마음을 다질 수 있다.

수천수만의 근심과 소망 담은 돌탑
사실 백담사는 고색창연함과는 거리가 있으나 백담사로 드는 수심교(修心橋) 주변 계곡의 돌탑이 독특한 풍경을 선사한다. 백담사나 설악산을 찾는 이들이 소원을 담아 쌓은 돌탑으로, 이듬해 여름 장마철에 큰물에 휩쓸려 허물어지면 다시 또 쌓아지는 백담사의 대표적 풍경이 되었다. 계곡에는 수천수만의 근심, 소망과 바람들이 수천 개의 돌탑으로 쌓여져 있다. 지난 여름 강물이 휩쓸고 간 후에 삶의 기쁨과 슬픔, 원망과 근심이 모두 다음 여름까지 쌓여진다. 수심교를 건너 산문으로 든다. 산문은 속세와의 격리를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백담사는 온전히 격리된 고립된 공간이다. 경내는 온전히 수행을 하거나 힐링을 하며 템플스테이를 체험하기에 안성맞춤의 공간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장점으로 백담사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특히 ‘당당’이란 테마로 운영되는 백담사의 템플스테이를 체험하다 보면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템플스테이를 총괄하는 백거 스님의 프로그램과 말씀은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성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일 먼저 배우게 된 것은 가슴에 부는 바람을 배꼽 아래로 내려앉히는 ‘절’하는 법이다. 또 산벼랑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가부좌를 틀고 앉는 법이다. 언제 어디서건 당당해지는 자세를 배우는 것이다.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이 불가에 귀의한 절집이다.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이 불가에 귀의한 절집이다.

새벽 계곡의 물소리로 정신을 깨우고 아침과 저녁 하루 두 차례의 예불에 참여하며 108배로 몸을 낮춘다. 또 법고 소리에 마음의 울림을 듣고, 한 걸음 한 걸음 계곡의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걷다보면 어느새 무거운 나는 사라지고 본연의 당당한 나를 마주하게 된다. 그 당당한 마음을 담아 돌탑을 하나 하나 쌓아가다 보면, 다시 샘솟는 기운으로 담대해진 나를 마주하게 된다. 결박된 현실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로운 나를 체험하며, 새로운 꿈과 희망, 도전의 마음을 다지는 기회가 되는 순간이다. 눈이 내린 겨울날, 백담사로 오르는 두어 시간의 산행만으로도 한적하고 여유로운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글·사진 이강 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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