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장병’도 소중한 병력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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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지키는 데는 ‘국민’이라는 공통의식이 ‘민족’이라는 협소한 개념보다 더 효과적인 시대에 들어섰다. 다문화 시대를 맞아 충성 대상이 ‘민족’에서 ‘국민’으로 바뀐 것이다.

대한민국이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덩달아 한국군도 다문화 물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제는 외국인 배우자와의 사이에 태어난 다문화 자녀들도 군문을 두드리고 있다. 군은 이미 다문화 가정 출신 군 간부까지 배출했다. 육군에서는 다문화 가정 출신 부사관들이 복무 중이다.

군 당국이 밝히고 있는 ‘다문화 장병’의 범주는 외국인 귀화자, 북한 이탈주민 가정 출신 장병, 국외 영주권자 입영장병, 결혼 이민자 등이다. 1991년생까지는 인종, 피부색으로 외관상 명백한 혼혈인은 5급 제2국민역으로 군복무가 면제됐다. 그러다 한국 국적이면 모두가 병역의무를 지도록 2010년 병역법이 개정됐다. 2011년 이후에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군 입대가 속속 늘기 시작했다.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로 구성된 경기 안산의 ‘코시안 어린이 합창단’ | 연합뉴스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로 구성된 경기 안산의 ‘코시안 어린이 합창단’ | 연합뉴스

10년 뒤면 ‘다문화 장병’ 1만명 전망
다문화 가정 출신 입대장병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200명대에 불과했지만 10년 뒤면 1만명 가까이 될 전망이다. 안전행정부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징병검사 대상자인 다문화 가정 출신 만 19세 남자는 1100여명이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2019년에는 다문화 가정 출신 징병검사 대상이 3000여명, 2028년에는 다문화 가정 출신 현역병 수가 1만2000여명을 넘어설 것으로 국방부와 병무청은 추산하고 있다.

군 당국은 출산율 저하로 다문화 가정 출신자들을 병역의무에서 제외할 경우 2029년쯤이면 병력 자원이 3만명까지 부족해질 수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국방부는 다문화 가정 출신 병사들을 귀중한 병력 자원으로 간주하는 정책을 펴게 됐다. 또 다문화 가정 출신이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사회 통합 차원에서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로 보고 있다. 향후 군은 다문화 가정 출신이 이슬람교를 포함한 소수 종교를 믿는 경우 종교활동의 여건을 보장하는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단일문화 공동체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병사들끼리 문화적인 충돌이 일어날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장병들 간의 문화적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교육부가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다문화 학생 수는 5만6000여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부모 한쪽 이상의 국적은 중국이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일본, 필리핀, 베트남, 태국, 몽골 순이었다. 이들이 성장해 군에 입대하게 되면 알게 모르게 문화적 차이를 드러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군 교육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국방부는 대한민국 국민이 된 북한 이탈 청소년이 입대하는 상황에도 대비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북한을 이탈한 청소년의 군 입대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병역법을 보면 아직까지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 주민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는 군 입대를 할 수 있지만, 탈북 청소년은 병역의무가 면제된다. 그러나 이제 입영 연령이 되는 북한 출신 청소년 모두에게 군복무를 허용해야 하는 시점이 멀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가를 지키는 데는 ‘국민’이라는 공통의식이 ‘민족’이라는 협소한 개념보다 더 효과적인 시대에 들어섰다. 국방부는 벌써 ‘군인복무규율’을 개정해 2012년 2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개정안에서 주목을 받은 대목은 “임관(입영) 선서문의 ‘민족’ 용어를 현실과 시대적 흐름을 감안해 ‘국민’으로 개정한다”는 부분이었다. 이는 한마디로 다문화 시대를 맞아 충성 대상을 ‘민족’에서 ‘국민’으로 바꾼 것이다.

군 관계자들은 다문화 가정 출신 장병들의 경우 군이 평화유지군 등으로 해외파병을 할 때 ‘한국 홍보대사’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혼혈로 인해 부대 내에서는 튀는 외모가 해외 파병지에서는 현지인들에게 친근감을 줄 수 있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군에서는 병영체험과 안보체험 캠프에 지역거주 다문화 가정을 초청해서 미리 군대를 경험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다문화 가정 출신들에게 안보관도 심어주고 군에 대한 친밀감을 높이는 효과를 거둬 일석이조다. 군 당국은 또 다문화 가정 출신 병사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는 군내 장병들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고 판단해 군 간부와 병사를 대상으로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제고할 수 있도록 부대별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군 당국은 이 외에도 다문화 가정 출신의 자녀들에게 군 입대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빠른 적응을 돕도록 하기 위해 ‘다문화 동반 입대병’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를 테면 아시아계 다문화 가정 자녀끼리 동반 입대할 수도 있고, 다문화 가정 자녀와 절친한 일반 가정 자녀가 함께 입대하는 식이다.

다문화 인식 전환 교육프로그램 운영
그러나 군대는 학교보다 규율이 엄격하고 스트레스를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면 병영 내에서 다문화 가정 출신 장병들은 다른 병사들의 집단 따돌림, 소위 ‘왕따’ 대상이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 경우 자칫 일탈행위로 이어질 수 있어 군도 이런 문제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 총기를 다루는 군의 특성상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특별하고도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문화 가정 출신 장병에게 차별화된 관심과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군의 다문화 장병에 대한 관리의 핵심도 이들을 차별대우하지 않겠다는 데 모아지고 있다. 나아가 군은 다문화 가정 출신 병사들의 신상을 아예 공개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군의 자체 조사 결과에서도 다문화 가정 출신 장병 대부분은 자신들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을 원치 않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게다가 이들 스스로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다문화’라는 인식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다.

군 지휘관들은 통일 이후 북한 청소년들이 한국군에 입대하는 시대에 대해서도 대비를 하고 있다. 이때가 되면 사회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북한 청소년들은 또 다른 다문화 가정 출신 장병들로 분류될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은 사회주의에 익숙해 인종이 다른 자본주의 국가 출신들보다 오히려 남한 출신 장병들과 문화 충돌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세계화 시대라는 요즘 미국 국적자에게도 모국의 국적을 인정해주는 나라는 30개국이 넘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자국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나라가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국방부가 이중국적을 가진 사람에게는 장교나 부사관 임용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군 간부는 군사기밀을 취급하는 직책이 많기 때문이라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이중국적을 지닌 자가 외국과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국가안보나 기밀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바야흐로 ‘이중국적’을 넘어 ‘다중국적’ 시대에 들어서 있다. 그런 만큼 앞으로는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 특수한 임무를 맡기기 위해 이중국적 장교를 배출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박성진 경향신문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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