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화가 작품들 걸린 ‘국방부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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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에는 유명 화가의 작품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가들의 군을 묘사한 작품을 국무위원들 차원에서 구입해 전달했거나, 유력 인사들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을 기증한 것들이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군에는 대작 미술품이 꽤 많다. 컬렉션이 그림이나 조각과 같은 미술 수집품의 의미라면 ‘국방부 컬렉션’으로 부를 만하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신청사 1층 현관 정면에는 운보 김기창 화백(1914~2001)의 ‘적영’이란 그림이 걸려 있다. 적영(敵影)은 한자로 ‘적의 그림자’라는 뜻이다. 이 작품은 크기가 가로 2m, 세로 3m 정도로 한국군 부대의 베트남 파병 이후 가장 치열한 전투였던 베트남 638고지 전투, 일명 ‘안케 고개’ 전투를 묘사한 작품이다.

고 운보 김기창 화백의 1972년 작품 ‘초연’. | 공군 제공

고 운보 김기창 화백의 1972년 작품 ‘초연’. | 공군 제공

실제 그림을 보면 밀림을 뚫고 포복하면서 전진하는 맹호부대 장병들의 눈이 번뜩이고 있다. 그림 문외한이 봐도 한국군 장병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위 ‘안광’이 일품이다.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한 이후 베트남 국방장관이 첫 방한했을 당시 국방부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혹시라도 베트남 국방장관이 이 그림에 관심을 가지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이었다. 그림을 아예 치우기에는 부담스러웠던 국방부가 짜낸 아이디어는 작품의 배경을 설명한 ‘제목 동판’을 눈에 잘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동판 위에 새겨진 작품 설명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읽기가 쉽지 않다.

운보는 1972년 6월 14일부터 7월 4일까지 베트남을 방문한 후 ‘월남전쟁기록화전’에 이 그림을 출품했다. 그리고 당시 국무위원들이 이 그림을 구입해 국방부에 기증해 국방부 현관에 걸리게 됐다.

그런데 이 그림은 일제시대 일본군을 미화한 ‘적진육박’과 너무도 유사한 탓에 광복군의 맥을 잇고 있는 한국군의 정통성을 훼손한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친일청산을 주장하는 민간단체에서는 지금도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12·12 쿠데타 당시 총탄 세례 받기도
‘적진육박’은 일제시대 당시 남양군도에서 대검을 소총에 끼운 채 적진의 미군들을 향해 접근하고 있는 일본군의 육박전을 묘사한 그림이다. 작품에서 착검을 한 일본 황군의 모습을 보면 호전성이 맹수의 표범을 방불케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적진육박은 일제 군국주의를 찬양하고 소위 ‘황국신민’의 영광을 고취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의 후원을 받아 경성일보사가 1944년 3월부터 7개월간 서울에서 연 ‘결전’ 미술전람회에 출품된 작품이다. 이 그림은 전람회에서 ‘조선군 보도부장상’을 받았다. 또 ‘소국민’이라는 어린이 잡지에 사진으로 실렸으나 원화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는 운보의 작품을 철거할 생각이 전혀 없다.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을 묘사한 그림 가운데 이만큼 탁월한 작품이 없고, 군의 사기를 올려주기 위해 국무위원들이 정성을 모아 군에 기증한 작품이라는 판단에서다.

박항섭 화백의 작품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평양 피난민’과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평양 피난민’ 확대장면.

박항섭 화백의 작품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평양 피난민’과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평양 피난민’ 확대장면.

이 작품은 운보의 친일논란과 별개로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한 그림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나회 출신 한 예비역 장성의 증언에 따르면 1979년 12·12사태 당시 국방부를 습격한 쿠데타 세력이 쏜 총알이 그림 속 국군 병사의 눈알을 관통해 복원작업을 거쳤다고 한다. 운보 작품은 국방부 구관에 있다가 청사를 신축하면서 신청사 현관으로 옮겨 왔다. 국방부 구관에는 지금도 당시 총알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림을 보수했다는 구체적인 근거 서류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운보 그림뿐만 아니라 다른 그림도 12·12 쿠데타 당시 총탄 세례를 받았다. 게다가 운보 그림은 1발밖에 맞지 않았지만 다른 그림은 상당히 많은 총알 세례를 받았고, 마찬가지로 복원작업을 거쳤다. 그 그림이 바로 박항섭 화백의 작품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평양 피난민’이다.

12·12 당시 국방부에서 벌어진 총격전은 구관 청사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가장 치열했는데 이 작품이 바로 그곳에 걸려 있던 탓에 총알을 많이 맞았다.

박 화백이 1967년 6월에 그렸다는 이 작품은 1·4후퇴 당시 가족을 북에 둔 채 본인만 남하한 데 대한 죄책감을 표출한 그림이다. 그림 옆에 붙어 있는 작품 설명에도 작가의 그리움과 속죄의 눈빛이 담겨 있다고 적혀 있다.

공군은 보관 작품 체계적 전산관리
복도 막다른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그림의 크기도 대작이다. 관제엽서 한 장이 1호라는 것을 감안하면, 가로 길이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이 작품의 세로 길이가 성인 남자의 키보다 긴 것으로 미뤄 족히 200호는 넘는다.

그러나 이 작품의 보관상태는 썩 좋지 않다. 신청사에 있는 운보 그림이 유리로 보호되고 있는 반면 구관에 여전히 걸려 있는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평양 피난민들’은 작품의 표면이 그대로 외부에 노출돼 일부는 색깔이 변하고 일부는 물감이 벗겨지고 있는 상태다. 미술계에서 보면 통탄할 일이 아닌가 싶다.

화가 박항섭(1923~1979)은 황해도 장연 출신으로 한국 근현대 서양화 1세대 작가이다. 도쿄 가와바타화학교를 1943년 졸업했고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과 중앙미술대전 운영위원을 지냈다.

그는 인간의 내면을 읽어내는 깊이 등이 돋보이는 추상화로 한국 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작가라고 한다. 그에게는 고향이란 늘 그리운 곳이요, 예술적 모티브였다는 게 미술계의 평가다.

국방부에는 천경자 화백의 1972년도 작품인 ‘꽃과 병사와 포성’도 있다. 이 외에도 유명 화가의 작품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유명 화가들의 군을 묘사한 작품을 국무위원들 차원에서 구입해 전달했거나, 유력 인사들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을 기증한 것들이다. 그러나 일부 대작을 제외하고는 보관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공군이 컬렉션 관리를 잘하고 있는 편이다. 공군은 수년 전부터 소장하고 있는 미술작품 880여점을 체계적으로 전산관리하는 한편 작품 하나하나를 인트라넷에 올려 놓았다. 공군은 작품의 분실 및 훼손, 도난 등을 우려해 본부 물자과에서 미술품 전산관리체계를 개발해 관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베트남전에서 F-4 팬텀기 편대가 공대지 작전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 운보의 1972년 작품 ‘초연’이다. 이 그림은 김종필 전 총리가 1972년 공군 11전투비행단에 기증한 작품으로 추정 가격이 4억~5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공군도 상당한 세월을 거치면서 상태가 나빠진 이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에 의뢰해 6개월간의 복원작업을 거쳤고 지금은 공군사관학교 본관에 전시하고 있다.

<박성진 경향신문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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