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미혼모와 이혼남의 ‘하인리히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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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강해지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할게요. ‘천국 같은 사랑을 할 준비가 됐다’고.”

사랑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 벼락처럼, 천둥처럼 떨어질까, 아니면 가랑비에 속옷 젖듯 살금살금 다가올까. 탕웨이 주연의 <시절인연>은 “사랑은 살금살금 다가온다”고 말한다. 시절인연이란 모든 인연에는 오고가는 때가 있다는 의미다. <시절인연>은 앞서 중국에서 개봉돼 중국 로맨틱 코미디 사상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중국 개봉 당시 제목은 <베이징에서 시애틀을 만나다>였다.

미혼모 쟈쟈(탕웨이 분)는 애인의 아이를 임신했다. 중국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의 출산을 허용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기 위해 미국 시애틀을 찾는다. 푸드잡지 편집장 출신인 그녀는 막무가내에 철이 없어 보인다. 명품을 사기 위해 애인이 준 카드를 마음껏 써버린다. 운전기사 프랭크가 그녀의 출산을 돕는다. 운전을 해주고, 산후조리원을 알아봐 준다. 프랭크와 딸이 살갑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쟈쟈는 관심을 갖는다. 알고 보니 프랭크는 1년 전 아내와 이혼했다. 어느날 애인으로부터 받은 카드가 지급정지된다. 그녀는 일순간에 빈털터리가 됐다. 어려움에 빠진 그녀 옆에 프랭크가 있다. 미혼모와 이혼남. 남들의 눈에는 쉽게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다.

<시절인연>의 모티프는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 주연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는 부자 관계가 알콩달콩한데 <시절인연>에서는 부녀 관계가 그렇다.

[영화 속 경제]시절인연-미혼모와 이혼남의 ‘하인리히 법칙’

쟈쟈가 보기에 프랭크는 자기일을 엉성하게 처리하는 운전사다. 프랭크의 눈에 쟈쟈는 예의없고 막돼먹은 여자다. 그런데 알고 보니 둘 다 아픔이 있다. 쟈쟈는 출산을 앞둔 미혼모이고, 프랭크는 사랑에 실패했다. 둘은 서로에 대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간다.

어떤 일이 발생할 때는 대부분 징조가 있다.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대형사고도 마찬가지다. 어떤 대형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앞서 이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존재한다. 1명이 중상을 당하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사고를 당한 경상자가 29명이 있다. 앞서 그런 부상을 당할 뻔한 사람은 300명이 있다. 이를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한다. 하인리히 법칙은 1:29:300 법칙이라고도 한다.

하인리히 법칙은 산업재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1931년 미국 트래블러스 보험사 직원인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산업재해 예방:과학적 접근’이라는 책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세월호 침몰사고와 같은 대형재난도 따지고 보면 그 전에 수많은 징조가 있었다는 얘기다. 세월호를 운영했던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들의 사고가 잦았고, 사고난 선박들은 선령 15년 이상 되는 배들에 몰려 있었다.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세월호가 기우뚱하게 제주항에 입항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세월호는 수많은 경고와 징후를 줬지만 선장과 선사는 이를 인지하지 못했거나 무시했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파산한 기업은 6개월~1년 전부터 위험징후가 보이는 경우가 많다. 협력사에 대한 결제를 자꾸 미룬다든가, 임금 혹은 대출이자의 연체가 시작될 수 있다. “일시적 유동성 위기 때문”이라고 통상 항변을 하지만 자금이 넉넉한 기업은 절대 자금집행을 늦출 리가 없다는 점에서 뭔가 석연찮은 게 사실이다. 월드컵에서 부진한 성적을 낸 팀도 그 전부터 팀 불화와 같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는 경우가 많다.

쟈쟈와 프랭크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느낀다. 전 아내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겠다는 프랭크에게 쟈쟈는 “당신은 너무 착하다”며 역정을 낸다. 온갖 짜증을 내는 쟈쟈 곁을 프랭크는 말없이 있어 준다.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랑의 징조는 충분히 있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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