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도 전쟁” 군의 구조체계·역할 정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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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구조·탐색활동 기간 내내 해상에 함정 30~40척, 병력 3000여명을 배치했다. 항공기는 20여대가 투입됐다. 그러나 투입한 대규모 장비와 병력에 걸맞은 성과를 내놓지 못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6825톤) 침몰사고가 발생하자 지난 16일부터 군은 민·관과 함께 바다 위와 수중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구조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첫날부터 군은 지원에 나섰다. 지난 16일 오전 8시 58분쯤 목포해경에 사고 발생 신고가 접수된 뒤 군의 첫 조치는 11분 후인 9시 9분 해군 3함대의 유도탄 고속함인 한문식함을 출항시킨 것이었다.

이후 군은 사고해역에 대형 수송함인 독도함(1만4000톤)과 구축함인 대조영함(4500톤), 호위함(1800톤)인 서울함과 충남함, 상륙함인 향로봉함(2600톤), 초계함인 대천함(1200톤), 유도탄고속함(450톤), 고속정(200톤) 5개 편대, 항만지원정 2척 등을 배치했다. 해상초계기(P-3C)와 링스(LYNX) 해상작전헬기, 수송헬기 UH-60 등도 보냈다. 군은 구조·탐색활동 기간 내내 해상에 함정 30~40척, 병력 3000여명을 배치했다. 항공기는 20여대가 투입됐다.

군의 세월호 실종자 수색·구조작전을 지휘한 독도함. / 경향신문 자료

군의 세월호 실종자 수색·구조작전을 지휘한 독도함. / 경향신문 자료

구조작업 진두지휘한 독도함
군은 시험 운행 중인 통영함을 제외한 청해진함, 다도해함, 평택함 등 해군 구조함 3척을 사고 현장에 보내 잠수사들을 지원했다. 청해진함에는 심해 잠수구조정(DSRV)과 19명까지 감압 치료할 수 있는 감압장비(챔버)가 설치되어 있고 군의관 1명이 타고 있다. 수상함 구조함인 평택함은 2500m까지 잠수작전을 지원할 수 있고 27톤가량의 견인능력과 270톤의 인양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1년 7개월 전 진수된 수상구조함인 3500톤급 통영함은 수중무인탐지기(ROV) 등의 성능 미충족으로 해군 인도가 늦어져 실종자 수색·구조 현장에 투입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구조팀은 미측으로부터 원격조정무인잠수정 ROV(remotely-operated vehicle) 2대와 이를 운용할 수 있는 미국 기술진 2명을 지원받았다. ROV는 카메라와 음향탐지기를 갖춘 원격 수중 탐색장비로 1980년대부터 깊은 바닷속에서 난파선 탐사, 기뢰 제거 등 위험한 임무에 활용돼 왔다. 그러나 ROV는 해상에서 조정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작고 가벼워 조류가 거센 사고 지점에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 해병대 제3원정군 소속인 해군 상륙강습함 본험 리처드호(4만톤)는 사고 근해에 투입된 군함 가운데 가장 큰 선박이었다. 리처드호는 투입 헬기의 해상 발진기지 역할을 했다. 본험 리처드호를 이용하면 투입된 헬기가 급유 등을 위해 육지로 날아가는 시간을 아낄 수 있어 그만큼 구조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리처드호의 함정 내 의료시설은 웬만한 병원을 능가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생존자를 찾지 못해 리처드호의 이런 기능은 활용되지 못했다.

군의 ‘세월호’ 실종자 수색·구조작전을 현장에서 지휘한 곳은 독도함이었다. 군은 독도함에 군 현장구조지원본부와 탐색구조단을 설치했다. 황기철 해군 참모총장은 군 구조현장지원본부장을 맡아 독도함에서 구조작업을 진두지휘했다. 해군본부 김판규 인사참모부장(소장)은 탐색구조단장으로 임명돼 해상 탐색 구조작전을 지휘했다. 해군 인참부장이 이례적으로 탐색구조단장 역할을 한 것은 김 소장이 천안함 침몰사건 때 특수전여단장으로 천안함 수색작업을 지휘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세월호 사고 해상에서 조명탄이 불을 밝힌 가운데 야간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진도=정지윤기자

세월호 사고 해상에서 조명탄이 불을 밝힌 가운데 야간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진도=정지윤기자

군 현장구조지원본부는 세월호가 해저 바닥으로 침강이 계속 진행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부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리프트 백(공기주머니)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 리프트 백은 개당 35톤의 무게를 들어올릴 수 있을 정도의 부력을 가졌다.

군은 CN-235 수송기를 동원해 조명탄을 발사, 야간 탐색을 지원했다. 해군 해난구조대(SSU·Ship Salvage Unit)와 해군 특수전여단(UDT/SEAL·Underwater Demilition Team/Sea, Air and Land), 육군 특전사 요원 등 410명의 구조대원은 해상 및 수중탐색을 지원했다. 육군은 의료병력을 투입했다.

해군 해난구조대, 해군 특수전단 잠수사들은 수색·구조작업을 실시했다.

수중 탐색작업 과정은 잠수사 1명이 여객선 선체까지 도달하는 데 15∼20분, 수중 탐색에 10∼25분, 작업을 마치고 올라오는 데 15분가량 각각 소요됐다. 이에 따라 해군은 구조전대 잠수조 5개조를 각 2명씩 총 10명으로 편성해서 립보트, 고무보트 등에 태워서 릴레이식으로 지원했다.

민·관·군 협조 시스템 매뉴얼 필요
잠수조를 5개조 10명밖에 편성하지 못한 것은 사고 발생 우려 때문에 많은 인원수를 동시에 물속에 투입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물살이 매우 센 환경에서 실시하는 세월호 수중 탐색작업에는 ‘가이드 라인’(유도줄)이라는 생명줄을 잡아야 선체까지 내려갈 수 있는데, 그 생명줄이 사건 발생 일주일 동안 6개밖에 설치되지 못했다. 군 구조대원들은 사고 발생 후 일주일 동안 현장에서 발견한 시신 150구 가운데 71구를 수습했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의 탐색·구조활동은 해경이 주도하고 해군 등 군이 지원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다 보니 군은 사실상 해경 지원 역할에 그쳐 성과는 미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군은 “해상 상황에서 큰 군함이 가까이 가면 사고 선박 등과 충돌 위험이 있어 작전구역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져 후방을 지원하고 주도적 역할은 해경이 한다”며 “침몰된 후 해난구조대를 수중에 투입하려 했지만 사고 초기에는 가이드라인이 설치되지 않아 잠수사 100명이 있다 해도 수중 수색에 나서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에는 ‘재난도 전쟁’으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재난에 대한 군의 구조체계와 역할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고 초기부터 군만이 지닌 첨단 해난장비와 함께 해군 해난구조대, 해군 특수전여단, 해병 특수수색대 등 군의 특수 인명구조 인력을 조기에 투입했다면 피해자를 한 명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월호 침몰사고와 같은 대형 재난사고가 발생할 경우 범정부사고대책본부 구성과는 별도로 평소부터 민·관·군 협조 시스템 매뉴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 대형 재난 발생에 대비해 민간 전문가, 군 구난 전문가 등의 인력풀을 평소 확보하고 있다가 재난 상황별로 어떤 기관과 지원단을 어느 시기에 투입할지 매뉴얼을 미리 만들어놓아야 군의 인력과 장비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어찌됐건 군은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에 투입한 대규모 장비와 병력에 걸맞은 성과를 내놓지 못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박성진 경향신문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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