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북한 도발) 보고 칼(비싼무기 구입) 빼는 군 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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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은 북한의 도발 때마다 들끓는 국민 여론을 우선 잠재우고 보자는 식으로 임기응변식으로 비싼 무기 도입에 나서는 게 습관처럼 돼 있다. 거의 고질병적이다.

로또 당첨은 ‘인생 역전’으로 통한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평생 만져보기 힘든 10억원이 넘는 돈을 한꺼번에 손에 쥘 수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로또는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국군의 주력 무기들 값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한국군의 주력 전차인 K1A1의 가격은 대략 50억원 정도이다. 차기 전차인 흑표(K-2)의 가격은 무려 80억원대다.

2006년 경북 포항 앞바다에 신형 F-15K 전투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F-15K는 도입 가격이 1000억원을 훌쩍 넘는 전투기였다. 같은 해 통일부 예산이 800억원대였으니 통일부 예산보다 많은 국가 재산이 물속으로 가라앉은 셈이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4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에서 북한제로 추정되는 소형 무인항공기가 잇따라 발견된 데 대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박민규기자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4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에서 북한제로 추정되는 소형 무인항공기가 잇따라 발견된 데 대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박민규기자

한국군이 보유한 무기 중 가장 비싼 것은 세종대왕함급 이지스구축함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주 발표한 ‘2013회계연도 국가결산’을 보면 이지스구축함 한 척의 가격은 9105억원이었다. 두 번째로 비싼 무기는 해군의 대형 수송함인 독도함으로 5710억원이었고, 1800톤급 장보고Ⅱ 잠수함(5020억원), 공군의 공중조기경보통제기(3686억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처럼 현대전에 투입되는 무기나 장비는 그 가격이 천문학적이다. 나아가 첨단장비의 경우 운영유지비를 감안하면 그 액수는 더욱 늘어난다.

그런데 한국군은 북한의 도발 때마다 들끓는 국민 여론을 우선 잠재우고 보자는 식으로 대응하다 보니 비싼 무기 도입에 나서는 게 습관처럼 돼 있다. 거의 고질병 수준이다. 면밀한 사전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추진되면서 엄청난 국가 예산만 쏟아붓고 흐지부지되는 사례가 허다하다.

120억원짜리 대포병레이더 제구실 못해
대표적인 경우가 대포병레이더 아서(Arthur)의 도입이었다. 2010년 11월 북의 연평도 포격도발이 일어났다. 당시 대포병레이더 AN-TPQ 36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자 군은 급하게 대당 120억원짜리 신형 대포병레이더인 ‘아서’를 도입했다. 하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2011년 8월 북한 해안포 및 방사포의 발사지점을 파악하기 위해 나섰지만 ‘아서’는 사격원점을 잡아내는 데 실패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군당국은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주요 항만 해저에 센서를 설치하겠다는 내용의 해저음향감시체계 구축사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것이 탁상공론이었다는 것은 곧바로 드러났다. 서해지역은 중국 상선 수백 척이 오가는 데다가 평균 4∼5노트로 움직이는 조류 때문에 잡음이 지나치게 많아 사업의 효과를 거두기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북한 잠수함이나 잠수정 탐지를 위해서는 고유 음문 자료가 있어야 하지만 한국군에는 이런 자료가 전혀 없었다. 들끓는 국민감정을 달래는 차원에서 사전 준비 없이 시작한 임기응변식 관련사업은 초기 사업비 수억원만 날리고 접어야 했다.

다연장로켓‘구룡’. / 경향신문 자료

다연장로켓‘구룡’. / 경향신문 자료

2010년 후반부터 추진한 ‘번개사업’도 마찬가지다. 이 사업은 북한의 해안포에 대응하여 구룡(다연장로켓)에 시커를 장착해 정확하게 해안포를 타격하는 방안과 단거리 탄도탄에 지상기반항법장치(GBNS)를 부착해 갱도 속에 있는 해안포를 타격하는 방안을 주요 내용으로 했다. 그러나 전자는 이스라엘제 스파이크 미사일 도입사업으로 대체됐고, GBNS탄 방안은 연구개발에 실패했다.

2012년 10월 동해 22사단에서 북한군 병사가 전방경계소초(GOP) 철책을 넘어온 소위 ‘노크 귀순’ 사건이 발생했다. 군은 긴급히 윤형철책 설치라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 윤형철조망은 기준 미달로 무용지물이 됐다. 군은 앞서 1996년 9월 강릉 무장공비 사건 이후 동해안 전 해안에 철책을 설치했지만 효용성보다는 민원만 늘어나자 2000년대 들어서면서 모두 제거했다.

이처럼 군당국은 북한의 도발 때마다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기보다는 대응무기체계만 해외에서 들여오면 된다는 식의 임기응변 처방을 하다 보니 그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한반도에서 북한의 일회성 도발만 벌어져도 해외 무기상은 얼씨구나 하고 신나 하는 게 현실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북한 추정 무인항공기 사건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발견된 무인기의 수준을 대학생 정도면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무인항공기 대비 200억원 긴급예산 편성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미래비행체계실 김재무 책임연구원은 최근 과학기자아카데미에서 “북한제 추정 소형 무인항공기는 아주 낮은 수준의 ‘초보 무인기’”라며 “충남대 대학생들이 만들었던 무인기와 비슷한 사양”이라고 밝혔다. 충남대 전기공학과 무인항공기팀은 2008년 위성항법장치(GPS)를 이용해 ‘아리스 스톰’을 제작, 경북 울진에서 독도까지 450㎞를 왕복 운항시킨 사례가 있다.

그런데 군당국은 북한 추정 무인항공기 사건이 나자 지난 9일 “북한 소형 무인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방지역, 수도권지역, 후방지역 등 3개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 작전운용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청와대 등 주요 국가시설에는 저고도 탐지 레이더를 집중 배치하는 등 중첩 방어 개념을 적용키로 했다. 이를 위해 군은 긴급예산 200억원을 편성해 이스라엘제 전술 저고도레이더인 RPS-42 10대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당국이 이처럼 긴급한 전력 편성을 할 때마다 내놓는 ‘단골’ 입장이 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가 그것이다. 가령, 북한 추정 무인기에 생화학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불가능하지만 앞으로 기술을 더 발전시키면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대비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설사 무인항공기가 생화학무기를 공중에서 살포한다 하더라도 대부분 바람에 날아가 효과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또 북한의 소형 무인기가 3㎏ 내외의 폭약(TNT)을 싣는 자폭 기능을 가진 공격기로 활용된다 하더라도 실제적으로 큰 피해를 끼치기는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식이면 북한이 농업용 항공기에 독약을 넣어서 수원지에 뿌리는 테러를 저지를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위험에도 대비해야 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면 국내 모형비행기대회에서도 볼 수 있는 수준인 북한 무인기의 예상 침투 경로에 수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모두 저고도레이더를 배치해야 한다. 이는 모기를 보고 칼을 빼는 견문발검(見蚊拔劍)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졸속으로 이뤄졌던 무기 도입은 항상 ‘탈’이 났다. 제대로 활용이 안 되거나 구입비보다 더 비싼 운영유지비를 대가로 치러야 했다. 북한 위협의 우선순위를 정확히 판단한 뒤 합리적인 전력 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군사 전문가들의 지적에 군당국이 귀 기울여야 할 이유다.

<박성진 경향신문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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