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현상에 대해 “딱 내 이야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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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오세요. 더 가까이요. 많이 봤다고 생각할수록 속이기도 더 쉬우니까요.”

마술사들은 관객들에게 이렇게 유혹한다. 자신이 펼치는 마술이 속임수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듯 관객의 눈앞에 카드를 흔들고, 리본을 흔든다. 관객들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부릅뜨지만 결코 마술사의 트릭을 알아채지 못한다.

마술사들은 마음대로 공간을 나누고 합치고, 심지어 이동한다. 모자 속에 넣은 돈이 비둘기가 되기도 하고, 리본이 꽃무더기가 되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만약 마술을 범죄에 이용한다면?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의 <나우 유 씨 미:마술사기단>은 마술사들이 마술쇼를 통해 은행을 터는 이야기다. 각기 마술 능력을 가진 거리의 마술사 4명이 있다. 

독심술을 가진 오스본, 어디에서든 탈출할 수 있는 헨리, 무엇이든 열 수 있는 잭, 카드마술의 대가 아틀라스 등이다. 누군가가 이들을 찾아온다. 전설의 마술조직으로 불리는 ‘디 아이’다. 이들은 마술팀 ‘포 호스맨’을 만든다.

첫 번째 마술쇼는 뉴욕에서 프랑스 파리신용금고를 털어 300만 유로를 관객들에게 뿌리는 것이다. 두 번째 마술쇼는 자신들의 후원자 트레슬러 회장의 계좌에 있는 1억4457만 달러를 털어 관객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영화 속 경제]보편적 현상에 대해 “딱 내 이야기네!”

관객들은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자들. 트레슬러 회장은 보험사를 운영하면서 허술한 약관을 이용해 이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파리신용금고는 트레슬러 보험사로부터 보험증권을 인수한 회사다. <나우 유 씨 미>는 마술쇼를 이용한 일종의 금융복수극이다.

오스본의 독심술도 속임수다. 극중 아틀라스는 말한다. “(독심술은)속임수지. 바넘효과니까. 눈과 몸짓을 읽는 기술에 불과하지.” 바넘효과란 다른 사람들도 다 갖고 있는 일반적인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느끼는 심리를 말한다.

피니이서 테일러 바넘은 1800년대 말 ‘링링 브라더스 앤 바넘&베일리 서커스’를 운영하는 단장이었다. 이 서커스단은 지금도 세계 최고의 서커스단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바넘은 관객의 성격을 맞추는 마술로 유명세를 탔다. 

1940년대 말 심리학자 포러는 바넘 마술의 비밀을 풀어냈다. 포러는 학생들 각각의 성격 테스트를 한 뒤, 신문 점성술란에 게재된 내용을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학생들은 “내 성격과 딱 맞다”고 말했다. 점성술란의 내용은 일반인들의 보편적인 특성을 기술했지만 학생들은 자신들의 성격 테스트 결과로 믿었다. 포러가 이를 증명했다고 해서 ‘포러효과’라고도 부른다.

토정비결이나 사주, 혈액형·별자리로 보는 성격, 이 주의 운세 등도 대표적인 바넘효과다. ‘당신은 쾌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리다’든가, ‘고난이 시작되나 끈기를 가지고 이겨내라’는 꼭 내 얘기처럼 들릴 때가 많다.

바넘효과는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좋은 것일수록 강해진다. 주식투자나 부동산, 재테크 상담도 바넘효과를 이용한 것이 많다.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는 투자 원칙이 꼭 내 얘기인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는 것이다.

서커스와 쇼로 엄청난 돈을 모은 바넘은 ‘돈버는 법 20가지’라는 책을 냈다. ‘빚을 지지 마라’ ‘끈기를 가져라’ ‘무슨 일이건 전력을 다하라’ ‘내 자리에서 최고가 돼라’ ‘남에게 베풀어라’ ‘정직하라’ ‘고객에게 친절하고 정중하게 대하라’ ‘친구라도 담보 없이는 보증 서지 마라’ ‘신문을 읽어라’ ‘희망을 가지되 지나친 공상은 피하라’ ‘유용한 기술을 배워라’ 등이다.

‘바넘효과’가 경영자나 투자자들에게 주는 교훈은 ‘평범함’이다. 기업운영이나 투자의 성패는 성실함, 끈기, 베풂, 친절 등 매우 원론적이고 기본적인 것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바넘은 부자가 되려면 절약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했다. 무림 고수의 비법은 따로 있지 않았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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